생각(Thinking)/Meditation2024. 3. 2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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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8:1-11 I am NOT

1. 무리들이 예수님을 잡기 위해서 왔다.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3절). 

2. 예수께서는 이 시간을 위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다. 그랬기에 지금은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담대하게 이 시간을 맞이하고 계신다.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4절).

3. 그들이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고 말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대답하신다. “내가 그니라" (4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그니라"의 헬라어 표현은 그 유명한 “에고 에이미"이다. 영어로 표현하면 “I am…”이다. 

4.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진술하는데 사용된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6:35, 41, 48, 51), “나는 세상의 빛이다" (8:12), “나는 양의 문이다" (10:7, 9), “나는 선한 목자이다" (10:11, 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14:6), 그리고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15:1, 5)이다. 

5. 예수님께서 말한 “내가 그니라"라는 표현은 단순하게 그들에게 “내가 나사렛 예수다”라고 답하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이다"라고 대답하는 신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제 다가올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부활의 영광을 감당해야만 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신 대답이다. 물론 거기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6. 그래서 베드로는 자신의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어버리지 않는가?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는 그 종의 이름음 말고라" (10절). 예수님의 놀랍도록 의연하고 당당하심은 베드로의 급하고, 섣부른 행동과 비교된다. 

7. 내가 누구인지 아는 ‘나의 정체성', 그리고 하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아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예수님을 이토록 당당하고, 고통과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고 자신의 부르심과 사명 앞으로 걸어가도록 만들었다. 

8. 물론 나는 예수님이 아니다. 나는 죄인이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아는지가, 그리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내 삶을 결정한다. 이 부분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세례 요한이다.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묻는다. 당신이 그리스도 입니까? 엘리야 입니까? 세례요한은 대답했다. “나는 아니라 (I am not)" (요 1:21중) 예수님의 대답과는 정 반대의 대답이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I am” 이라고 대답하실 수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I am not”이라고 세레요한처럼 대답 해야만 한다. 나는 그가 아니다. 나는 안된다. 나는 불가능하다. 

9. 나는 나를 어떤 존재로 보는가?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나는 하나님의 일에 조금도 도움이 안되는 악하고 게으른 종일 뿐이다. 이런 나를 사용해 주시는 주님 앞에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순종과 감사, 그리고 겸손이다. 조금도 나를 과대평가하지 말고, 조금도 나를 착각하지 말자.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무익한 종일 뿐이다. 무익한 종은 나의 해야할 일을 하면 된다. 무익한 종의 정체성으로 오늘도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 어제 종려주일에 나뭇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함께 외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선포하며, 그리스도께서 태국의 진정한 왕이심을 선포 하였습니다. 이번 한 주 동안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사랑을 더 깊이 묵상하는 고난주간이 되게 하시고, 성금요일에 성찬을 통해 더 깊은 주님을 만나고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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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