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21-35 예수, “여호와가 구원하신다"
눅 2:21-35 예수, “여호와가 구원하신다"
1. 요셉과 마리아는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 지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그렇게 하기를 지시하셨기 때문이다 (21절). 그리고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가 구원하신다’이다.
2. 하지만 아기 예수를 위해 예언되는 내용은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렸던 정치적인 왕인 메시아가 아니었다. 그는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다” (34절). 예수님은 처음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인생이었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그의 죽으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해 살게 하셨다.
3.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위로를 받고 (25절), 평안을 경험하게 (28절) 된다. 이 일은 온 세상을 구원하는 일이지만 엄마인 마리아에게는 자신에게 있어서 온 세상과 다름 없는 아이를 잃게 되는 것이다.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35절)의 표현은 그 마리아의 마음을 어떨지를 표현해주고 있다.
4. 예수님을 이 땅에서 죽게 하시기 위해서 보내심은 우리 모두에게 복음이고, 기쁨의 소식이고,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엄마인 마리아에게는 기쁨이지만, 또한 극심한 슬픔과 고통이었다.
5. 마리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도 그러했을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죄인들 모두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시기 위해서 아들(자기 자신)이 오셨지만 이 아들은 온 세상의 시작 이후 처음으로 하나님과의 분리를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이신 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셔야만 했다. 하나님 입장에서도 마리아와 같이 영혼들을 구원하는 기쁨이자 또한 극심한 슬픔과 고통이었을 것이다.
6. 우리에게 복음은 너무나도 기쁜 소식이지만, 복음은 또한 무척이나 무겁고 힘든 소식이다. 참 왕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음이 기쁜 소식인 이유는 이 죽음이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극심한 슬픔과 고통은 없기 때문이다. 고전 15:53에는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이제 썩지도 죽지도 않을 새로운 몸을 주시고 또한 새로운 하늘과 땅을 열어 주셨기 때문이다.
7. 절대적으로 무능한 우리에게 복음은 먼저 찾아오셨다. 우리가 한 것이 없는데, 그 분이 와서 죽으셨다. 우리가 요청하지도 않았고, 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사랑이 오셨다. 극심한 슬픔과 고통만이 가득한 이 세상에 하나님 자신이 대속 제물이 되기 위해 오셨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직 그 복음을 내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8. 예수님의 이름과 같이 우리의 기여나 공로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오직 “여호와가 구원하신다” 나도 오직 그 복음을 믿는 것, 나를 위해 예수님이 오셔서 죽으셨다는 그 사실을 믿는 것 외에는 아무런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오늘도 삶에서 그 복음이 회복되기 원한다.
9. 입술로만, 머리로만 안다고 하지 않고, 그 복음에 내 삶의 실제가 되기를 원한다. “여호와가 구원하신다” 예수, 예수, 예수… 하나님의 그 고통이 오늘 나를 살리셨다. 그 사랑을,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내 삶으로 더 깊이 받아들이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