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2:47-53 내가 그 치료받은 대제사장의 종입니다
눅 22:47-53 내가 그 치료받은 대제사장의 종입니다
1. 예수님 께서는 자신의 십자가의 길을 기도로 정하셨고, 곧 배신자와 군인들이 그를 잡으러 왔다. 칼로 예수를 잡으러 온 무리들을 향하여 제자 중의 한 사람,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었다. 여차하면 칼로 저항하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에게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라고 51절은 기록하고 있다.
2. 수치와 칼을 참고 그 종을 치료까지 해주셨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예수님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만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분은 그 분과 반대의 자리에 서서 그 분을 거역하고, 그 분을 미워하고, 그 분을 죽이려고 한 그들을 위해서 역시 오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3. 나와 다른 자들을 품는 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생각이 다르고, 리듬이 다르고, 생활 방식이 다르고, 정치색이 다른 사람들을 품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지금 한국은 같은 신앙을 가졌음에도 정치적인 다름으로 인해 얼마나 나뉘어 있는가?
4. 그런데 예수님은 품으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조차도 사랑하셨다. 그것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의 모습이었다.
5. 내가 예수님의 편에 서 있다고 착각하지 말자. 나도 예수님의 반대편에 서 있었던 사람이었다. 교회 옆 집에 살면서도 예수를 알려고 하지 않았고, 예수를 믿는 것에 관심도 없던 사람이었다. 이런 나도 예수님께서 특별한 은혜로 불러주셔서 지금 선교사로 살고 있지 않은가?
6. 그러면 나의 일상은 항상 예수님 편에 서 있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예수님 편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고, 믿음을 가진 부모로써, 남편으로써, 선교사로써 부끄러울 때가 얼마나 많은가? 이런 나도 예수님은 품어주셨다.
7. 예수님께서는 ‘이것까지 참으시면서’ 나를 오늘도 사랑하고 계신다. 이것이 복음이다. 내가 그 죄인이고, 내가 그 예수님과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고, 내가 예수님과 상관없이 반대 쪽에 서 있었는데, 그 분께서 이것까지 참으면서 나를 살려주신 것이 복음이다.
8. 내가 믿음이 있다고, 내가 기독교인이라고 내가 예수님 편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죄인이고, 나는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이다. 오늘도 나에겐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하다.
9. 아이들과 24시간 지내는 것이 쉽지가 않다. 기억하자. 난 복음이 필요한 사람이다. 나는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 복음을 깊이 깨달아 예수님이 하신 것과 같이 ‘이것 까지 참을 수 있는’ 아이들과 있다 보면 그 이것이 참 다양하지만.. 그런 오늘 하루를 보내기 원한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말고, 작은 소리로 이야기 하자.
10. 오늘도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