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3:44-52 말씀, 성령충만함의 시작
행 13:44-52 말씀, 성령충만함의 시작
1. 우리가 복음을 듣고, 복음을 믿고 나면 삶이 달라지게 된다. 왜냐하면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고, 그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그저 멈춰있지 않기 때문이다. 복음을 들은 자는 변화를 겪게 된다.
2. 오늘 본문에서는 두 집단, 복음을 들었지만 믿지 않은 유대인들과 복음을 듣고 믿은 이방인들이 비교되어서 나온다. 유대인들의 태도를 보자.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46절)
3. 이방인들의 태도는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독기가 가득차고, 시기하고 비방하는 유대인들과 달리 이방인들은 기뻐하고 찬송하였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태도는 50절에서도 볼 수 있다.
4.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작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50절) 선동하고, 박해하고, 쫓아낸다. 하지만 그렇게 당했던 제자들은 어떠했는가?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52절)
5. 복음을 듣고 깨달은 자들의 삶은 화평과 온유함, 사랑과 기쁨이 충만했다. 성령의 열매들이 맺힌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모습은 성령의 열매가 아닌 악한 것들이 가득찼고, 시기와 질투, 폭력과 기만이 가득했다. 복음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6. 나는 복음을 거절했던 유대인들과 복음을 듣고 성령이 충만했던 사람들의 사이의 어디 즈음에 있는 것일까? 복음을 듣고 믿었는데, 성령의 열매가 맺혀가고 있는가? 아니면 시기와 질투, 기만하는 모습들이 있지는 않은가? 먼저 복음을 들었다 말하는 나를 돌아보자.
7. 매일 밤 10시에 Line에서 교인들 대상으로 성경읽기를 live로 하고 있다. 어제는 사도행전 11장을 읽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태국말을 제일 못하는 내가 태국 교인들을 대상으로 태국어로 성경을 읽고 있다.) 교회를 다니고,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좋아하지만 하루에 성경을 한 장도 잘 읽지 않는 교인들을 위해 시작했는데, 결국은 가장 은혜를 받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나'이다.
8.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면서 결국은 내가 그 말씀의 은혜와 능력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태국어로 읽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준비를 하면서 읽고, 또 라이브때 읽고, 다 읽고 나서 마음에 와 닿은 말씀을 나누고 하며 한 장을 여러차례 읽다보니 누리는 은혜들이 있다. 성령의 충만함의 시작은 결국 들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함에서 나오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9.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할 때 오는 그 신비함, 나는 연약하고, 나는 여전히 유대인들과 사도들 그 사이 어딘가에 어정쩡하게 있지만 나를 채우시는 그 말씀으로 인한 가슴의 뜨거움이 성령의 충만함의 모습 중에 하나가 아닐까? 물론 성령의 충만함을 어찌 한 가지로만 정의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서 결코 뗄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일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더욱 더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기 원한다.
10. 말씀이 없으면 내가 얼마나 쉽게 유대인의 모습이 되는지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삶을 채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오늘도 샬롬
*사진은 어제밤 성경읽기 live 사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