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삼 1:9-15 디오드레베 같은 나도…
1.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 (9절), 사람으로부터 진리로부터 증거를 받은 데메드리오 (12절). 누가 봐도 데메드리오가 옳다. 데메드리오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데메드리오 같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증거를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2. 2019년 한 해를 돌아보면서 내 삶은 어떠했을지를 돌아보니 나는 아마도 데메드리오 같은 자가 아니라 오히려 디오드레베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더 깊이 든다.
3. 내 안에 아닌척 하며, 겸손한척 하며, 성실한척 하며 으뜸이 되고 싶어했던 나를 발견하게 되니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입술로는 글로는 보이는 자리에서는 얼마든지 데메드리오 같이 살았지만, 행동으로는 말로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는 디오드레베 같은 자였던 사람이 나였다. (지금도 마음 속에서는 부인하고 싶다.)
4. 복음은 언제나 우리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그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수치를 주기 위함이 아니고, 우리를 정죄하기 위함도 아니다.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이것은 맞고 이것은 틀렸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물론 율법은 어느정도 그런 기능을 한다).
5. 복음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디오드레베 같은 자 라는 것이다. 우리는 선에 무능하고, 악에 유능한 자다. 하나님보다 언제나 내가 더 으뜸이 되기를 원하는 자다. 하지만, 그러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가 용납 받았음을 말한다.
6. 한 해를 돌아보며 내 삶이 디오드레베 같음을 깨닫고 다시 은혜 앞으로 나아간다. 나의 교만한 마음과 완악한 마음이 그리스도의 용납하심 앞에 다시 열리길..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다시 회복되길 원한다.
7. 내가 결정한다고, 내가 결심한다고 디오드레베가 데메드리오가 될 수가 없다. 오직 은혜가 필요하다. 팀 켈러 센터처치 99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복음의 능력은 두 가지로 다가온다. 첫째, “나는 내가 감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한 죄인이고 허물 많은 존재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둘째, “나는 내가 감히 바랐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용납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8. 내가 죄인인 것이 더 깊이 깨달아지는 (사실 다른 어떤 사람과 비교하며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리고 내가 훨씬 더 큰 사랑과 용납을 받았음을 깨닫고, 더 그 사랑 앞에서 겸손하게 서서 2020년을 돌아보며 내가 데메드리오 같은 삶을 살았음을 고백하고 싶다. (가능할까 싶지만.. 희망사항이니..)
9. 복음을 더 알고, 더 배우고, 더 느끼고, 복음으로 진정 삶을 살아가고 싶다. 선교사역도 이 복음이 기초가 되어 그들에게 사랑과 용납을 선포하고 싶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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