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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6:1-13 날마다 새로운 주님을 새 노래로 찬양합니다.
1절에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라고 시편이 시작된다. 읽자마자 바로 들었던 질문은 "왜? 왜 새노래야? 이전 노래면 안돼? 예전 찬양이면 안돼?" 라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그래서 열심히 ESV 성경을 찾아 보았다.
"새 노래 (참조, 40:3 , 96:1 , 98:1 , 144:9, 149: 1; 사 42:10; 계 5:9 , 14:3) 는 꼭 새로 작곡된 노래톨 의미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새 노래는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경험한 데서 나온 반응으로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역시.. 이 새 노래는 단순히 새로운 노래가 아니라 매일 매일 새로운 주님과의 만남에서 나오는 우리의 반응임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읽고 나니 마음이 더욱 어렵다. 내가 정말 새 노래로, 매일 새로운 주님과의 만남 속에서 주님을 노래하고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어제의 은혜, 몇 년전의 은혜, 혹 그것도 아니라면 그 이전, 이전의 은혜로 붙들고 살고 있지 않는가? 2절에서는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날마다 똑같은 것을 앵무새같이 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오늘 만난 주님, 오늘 받은 은혜, 오늘 새롭게 회복된 내 심령이 주님의 구원을 외처야만 하는 것일 것이다. 선교사로 살아가면서도 오늘의 은혜가 아니라, 오늘 만난 신선한(?) 주님이 아니라 어제의 주님, 언젠가 만난 주님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을 매일 새롭게 경험해야만 하는데, 그래서 내가 만난 그 주님을 오늘 이야기 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매일 큐티 하는 시간을 더 붙잡기 원한다. 내가 큐티 했다는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주려는 면피용 큐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주님을 만나고, 그 새로운 주님을 경험하고, 내 안에서 그 새로운 주님을 향한 찬양이 터져 나오길 원한다. 그리하여 시인처럼 하나님의 영광과 그 분의 오심을 진정으로 찬양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내 삶에 이 ‘새 노래’가 충만한 하루가 되기를 원한다. 태국어 공부를 통해서도, 아이들의 양육을 통해서도, 우리 형제, 자매들과 보내는 시간을 통해서도 ‘새 노래’가 흘러 나오길 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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