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18. 9. 24. 11:54
728x90
반응형
히 13:1-17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 주님을 깊이 바라보자. 

어제 큐티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평을 추구하자였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저녁 이후 아내와 말다툼이 있었고, 아내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내와 거의 싸우지 않는데, 최근 몇년동안 가장 크게 잘못한 것 같다. 무슨 내용으로 다퉜고, 무슨 내용 때문에 화가 났고 보다도 내가 아내에게 소리를 지르고, 아이들이 소리지르는 아빠로 인해 느꼈을 공포감에 참 미안했고, 그리고 묵상한 내용이 삶에 아무런 적용이 없었음에 무력감을 느꼈다. 남편으로써 아빠로써 완전히 실패한 하루였다. 말씀묵상을 왜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고민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펴는 것이 두려웠다. 

오늘 본문은 1절이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로 시작한다. 1절부터 마음이 불편하다. 내가 아내도 아이들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지 못하고 실패를 겪고 나서 보는 첫 말씀의 시작이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이다. 늘 부족한 사람임을 알고 있지만 나는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것 같다. 아내를 사랑한다고,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형제들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언제나 가장 사랑하는 존재는 바로 ‘나’이다. 나는 언제나 중요하고, 나는 언제나 인정 받아야 하고, 나는 언제나 사랑받아야 한다. 

그런데 주님은 오늘 나에게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고 말씀하신다. 나보다 다른 사람들을 더 사랑하라고 하신다. 예수님이 그 자신을 내어주심과 같이, 그리고 그 자신을 내어준 그 형제들을 사랑하라고 하신다. 다시 한번 말씀 앞에 나를 내려놓고, 도우심을 구한다. 나는 형제를 사랑할 수 없다. 내 본성으로도, 내 의지로도 못한다. 그래서 주님을 붙들어야 한다. 죽기까지 사랑하셔서 우리를 살리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바라봄을 통해서 다시 한번 무너진 내 마음을 추스린다. 잠시 잠깐만 사랑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사랑하기 원한다. 역시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 잠깐 정신줄을 놓으면 다시 내 본성대로, 내가 원하는대로 가게 되어 있다. 

이미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사과했지만 마음이 편하진 않다. 말씀이 내 삶을 이끌어 나가길 원한다. 오늘은 정말 형제들을 사랑하기를 계속할 수 있기를 원한다. 내 힘으로 안된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고, 주님께 나를 의탁하자.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728x90
반응형
히 1:1-14 우리가 온전히 의지할 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사실 의지할 만한 다른 것은 참 많다. 
가끔은 우리의 믿음을 의지하기도 하고, 또 가끔은 우리의 행위를 의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아들,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3절이 잘 요약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결국 아들이 하시는 일이다. 그 아들이 하나님이시고, 그 아들이 다시 오실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 아들이 누구인신지, 그 아들이 어떠한 능력의 하나님이신지 확실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것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이시며 (4절), 그 어느 누구도 받을 수 없었던 하나님 아들 (5절) 이라 불리신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는 영원한 공의 (8절)이시며, 그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하나님 (11절) 이시다. 그리고 그 분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13절). 

우리의 신앙과 삶에 있어서 우리가 의지해야 할 분은 오직 이 아들,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다. 우리는 그의 안에만 거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능력이 끝이 없으시고 영원한 하나님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가짜들과 바꾸는가?
이 아들을 의지하기 보다는 내 자신을 의지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매일의 순간순간이 '이 아들을 의지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의지할 것인가?' 이 싸움 아닌가?
내 삶의 이 아들이 아닌 다른 가짜들을 바라보지 않기를 원한다.

그런데 아마도 지금 내 삶에 유혹이 가장 심한 가장 큰 가짜는 ‘인정의 욕구’인 것 같다. 매우 자주 이 ‘인정의 욕구’를 예배하고, 이것이 채워지고 안채워지고가 내 삶에서 내가 귀한 사람이 되든지 아니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 같다. 복음이 내 삶에 드라이브를 거는 것이 아니라 이 ‘인정의 욕구’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한낱 ‘인정의 욕구’가 나를 붙들어가고 있다.

오늘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는다. 하나님이시며, 영원하신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연약함을 깨뜨리고 내 삶 가운데 임재하여 주시길 구한다. 더 이상 사람들로 부터 받는 인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보여주신 그 사랑이 나의 존재가치가 되기를 원한다.
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더 귀한 하루가 되고 싶다. 
시편의 기자의 고백처럼 시84:4-5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이 말씀이 오늘 내 삶에서 이루어지길 간절히 원한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18. 7. 29. 23:37
728x90
반응형

삼하 1:17-27


오늘 본문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위해 다윗이 애가를 지어 그들의 용맹과 그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다윗은 슬퍼하는 시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다윗이 사울로 인해 얼마나 힘이 들었는가? 너무나 힘든 그의 마음을 시편에 기록해 놓지 않았던가? 사울은 얼마나 다윗을 집요하게 질투하고, 그를 시기했었던가? 그런데 그러한 모든 것들을 뒤로 넘기고 다윗은 그를 위해 애곡하고, 그를 위해 애가를 부르고 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자들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사무엘로 부터 기름부음을 받았고, 자신이 왕이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어떠함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기름부음 받은 자들에 대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나라면 결코 하지 못할 행동들이다. 솔직히 삶에서 나보다 중요하게 여길만한 무엇이 뭐가 있을까? 때로는 심지어 아이들보다도 내가 소중한게아닌가? 그런데도 다윗은 자신보다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자들에 대해 귀히 여기고,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섬기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을 존중하자

비자 문제나 뜻과 다를 지라도 사람에 대한 존중을 내려놓지는 말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기쁨으로 나아가며.. 아이들에 대한 존중도 결코 잊지 말자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고그리스도안에서 내가 죽는 이다 .

728x90
반응형

'생각(Thinking) > Medita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하 2:12-32  (0) 2018.07.29
삼하 2:1-11  (0) 2018.07.29
삼하 1:1-16  (0) 2018.07.29
렘 49:23-39는 롬 6:23절의 거울이다.  (0) 2018.05.17
렘 49:1-6 암몬 자손에 대한 말씀  (0) 2018.05.15
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