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4. 11. 22.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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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18-29 죄를 용납하는 것도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1. 오늘 본문은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말씀이다. 오늘 본문도 다른 7개의 교회에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칭찬을 먼저 해 주신다. “네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19절). 

2. 두아디라 교회에 주신 칭찬은 처음보다 그들이 더 열심히 애를 썼다는 의미로 보여진다. 그들이 더 열심히 애를 쓰지 않았다면 처음보다 나중 행위가 어찌 더 많아질 수 있겠는가? 단순히 일 뿐만이 아니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의 성품까지 성장, 성숙한 것을 칭찬하셨다. 

3. 그러나 일적으로, 사역적으로, 정서적으로, 성품적으로도 성장, 성숙한 두아디라 교회의 문제는 죄를 “용납"함이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0절). 

4. 교회의 성장함과 성숙함 속에서 그들이 잘 못한 것은 작은 죄를 용납한 것이었다. 용납했다는 헬라어 단어는 몇 일전 나누었던 2:4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에서 버렸느니라에 해당하는 단어로 동일한 단어이다. 두아디라 교회도 에베소 교회와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들로 대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즉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세벨이란 여자를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 만든 것이다. 

5. 아마도 이 이세벨이란 여자는 이름으로 보아 음행에 관련된 행위나 관습 등에 관련된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죄에 대해서 단호히 끊지 못하고 여지를 두고, 여지를 둔 것이 결국 하나님보다도 더 중요하게 된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6.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면서도 얼마든지 쉽게 죄를 용인할 수 있다. 이 정도면 내가 아직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죄를 용인하기도 하고, 이정도는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고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죄를 용인하기도 한다. 작은 죄의 눈덩이가 굴러가면서 도저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죄의 무게로 나를 누르게 되는 것이다. 

7. 작은 죄에 타협하면 그 뒤는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심지어 그 죄가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앉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두아디라 교회를 통해서 보고 있고, 또 우리 삶의 수 많은 경험들을 통해서 봐 왔다. 죄는 전염성이 있고, 죄는 우리가 우리 생각처럼 쉽게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22은 우리에게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모양이라도 취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죄에 사로잡히고,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만다. 

8. 내가 지금 용납하고 있는 죄는 무엇이 있을까? 때로는 단어 사용에 문제가 있다. 아이들에게 험한 말이 나올 때가 있다. 때로는 세상적인 기준이 하나님 보다 앞설 때도 있다. 모두들 다 이렇게 하는데 이정도는 괜찮겠지? 라는 마음으로 쉬이 죄를 가벼이 여길 때가 있다. 정신을 차리고 작은 죄라도 용납하지 말며, 작은 죄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자. 죄는 언제나 가장 가벼운 모습으로 찾아와서 가장 무겁게 우리를 짖누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죄가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하자. 조금도 죄에 대해서는 관용하지 말자. 그래야 내가 산다. 

9. 죄를 용납하는 두아디라 교회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를 기회를 주었으되…” (21절). 회개의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하고, 다시 주 앞으로 나아가는 내가 되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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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