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0. 4. 2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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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39:1-8 낫게 혹은 낮게

1. 히스기야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기도를 통해 자신의 병이 낫는 것을 경험했다. 하지만 기도로 ‘병 나음’의 경험이 오히려 그에겐 독이 되었다.

2. 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 그는 자신이 한 것인 마냥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그의 마음에 ‘교만’이 싹트기 시작했다.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의 병이 나았음을 듣고 글과 예물을 보냈다 (1절). 

3. 자신이 인정받은 느낌이 들어서 였을까? 히스기야는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고 적국이 될지도 모르는 나라에게 자신들의 보물과 무기를 모두 보여주는 우를 범했다. 한 마디로 자신의 패를 상대방에게 다 까버린 셈이다. 그러니 바벨론 입장에서는 '나를 잡아 먹으세요’ 라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4. 영적으로 성숙, 뛰어났던 그는 그의 ‘병 나음’의 경험에서 찾아오는 ‘교만함’으로 이제 끝을 모르고 무너지고 있다. 이사야의 충격적인 예언(5-7절)에도 그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모든 소유와 조상들의 모든 소유가 바벨론으로 다 끌려갈 것이다. 네 자손이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해도 그는 ‘좋소이다’ (8절) 라고 대답한다. 더 이상 그에게 영적인 것도, 기도도, 하나님 앞으로의 나아감도 볼 수가 없다.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라고 말하며 그는 자신만 괜찮으면 다 괜찮다는 식으로 말한다. 

5. 신앙의 경험이 기적의 체험이 우리를 성숙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싹트는 ‘교만함’은 우리를 언제든지 넘어지게 하는 올무가 되고야 만다. 나를 다른 사람보다 ‘낫게' 여길 것인가? 나를 다른 사람보다 ‘낮게' 여길 것인가? 내가 하나님의 '무익한 종'임을 깨달을 것인가? 아니면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을 것인가? 

6. 히스기야를 통해 무익한 종의 고백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라 할지니라” 눅 17:10 내가 뭘 한 것이 있는가? 때로는 억울하기도 하고, 때로는 화가 날 수도 있는 상황에 있을 때도 있지만… 나는 무익한 종의 모습인가? 히스기야 왕의 모습인가? 

7. 나를 낫게 여기는가? 나를 낮게 여기는가? 무익한 종의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아버지로 부터 받은 사명을 다 마치시고, 자신이 높아지길 주장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죽음과 아버지 하나님과의 단절을 경험하셨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고, 단 한 번도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어떠한 권리도 주장하지 않으셨다. 

8. 그런데 나는? 그런데 히스기야는? 내가 낫다고 여기고, 내가 많이 경험했다고 여기고, 내가 많이 안다고 여길 때, 내 안에서 ‘교만함’이 샘솟을 수 밖에 없다. 병을 낫게 하신 분도,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는 분도, 그리고 그 일을 행하시는 분도 하나님임을 깨달아야 내 안에서 ‘교만함’을 몰아낼 수 있다.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어찌 교만하겠는가? 

9. 히스기야는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이 자신의 기도나 자신의 영험함(?)에 있음을 생각하며 교만해서 나라와 후손들의 미래까지도 망치는 우를 범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잠 18:12 예수님의 겸손함을 구하는 하루가 되자.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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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