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5. 3. 1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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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20:24-31 손가락을 그 성흔에 넣을 기회를 버릴 만큼 강렬한 만남

1.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도마는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았다 (24절).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믿을 수 없었고, 그는 체험을 하면 믿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5절).

2. 도마의 이야기는 이해가 먼저되어야 믿음이 따라온다고 말하는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과 유사하다. 하나님과 성경을 이해하려고 하는 시도와 노력은 너무나도 멋진 것이다. 이해없이 그저 강요로 믿으라고만 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3. 그러나, 그런 도마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신다. 그 분은 다른 제자들에게 나타난 것과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닫힌 문 속에 나타나셔서 샬롬을 말씀하신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6절)

4. 그리고 도마에게 체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초청하신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7절) 예수님의 초청은 매우 친절했다. 도마가 제자들에게 했던 말을 아시고, 그 말 그대로 해보라고 초청하신 것이다.

5. 도마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지금 닫힌 문들 사이로 나타나신 그 분, 이미 열하루 전에 돌아가셨고, 여드레 전에 부활하신 그 분이 지금 내 앞에 서 계시고, 나의 믿음의 고민들을 아시고 그것을 확인해보고 나서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6. 그런데 도마는 그 손의 못 자국에, 옆구리의 창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았다. 혼돈과 카오스 중에 있는 그에게 샬롬을 주시는 분을 만났기 때문이다. 죽으셨지만 지금 부활하여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하고 나니 이성적인 고민과 이해되지 않는 모든 것들이 그 즉시로 해결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손가락을 넣어볼 기회를 거절한 것이다.

7. 이성과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은 매우 아름답다. 그 자체로도 매우 중요하다. 특별히 믿음을 강조하는 기존의 교회 분위기는 이성을 억압하였고, 무조건 '믿습니다' 만이 바른 믿음의 자세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의심은 믿음과 반대되는 감정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지성과 이성으로 탐구하고 알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일이다.

8.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방법은 기질과 성품에 따라 모든 사람이 다 다른 방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예수님을 만나는 방법은 주로 묵상을 통해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섬세하게 나에게 말씀하시는 그 분을 만난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예배이고, 어떤 사람은 기도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드라마를 보는 것일 수도 있다. 수 많은 다른 방법들이 있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기독교에 대한 지적으로 탐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지적인 방법을 넘어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한 각 개인의 고유한 방법이 있어야만 우리는 손을 넣어볼 기회를 거절할 수도 있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믿는 자가 될 수 있다.

9. 도마는 아마도 그 이후 단 한 번도 '아, 그 때 손을 넣어볼걸' 이라며 후회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순교하기 까지 예수님을 사랑했고, 그 분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잊을 수 없는 그 시간이 손을 넣어보는 경험보다도 더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바로 그 경험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10. 나는 오늘 그 경험을 하고 있는가? 단순히 이해되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 차원이 아니라 손가락을 넣어볼 수도 있는 그 기회를 버릴 만큼의 강렬한 예수님과의 만남과 사귐이 있는가? 그런 만남이 있는 오늘 하루가 되기 원한다.

11.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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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