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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8:12-21 내 몸이 성전이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고 있다. 그런데 누구를 위해 하고 있는가? 그는 오늘 본문에서 여러번 이야기 한다. 13절에서는 ‘주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했다 말하고, 20절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했다 말한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는 우주보다 더 크고 광대하신 하나님을 작고 작은 성전에 가두려고 하고 있다.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으로 축소시키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그 위에 임재하신다. 우리의 작은 머리로 하나님을 제한하고, 제한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 위에 역사하신다. 이것이 은혜이다.
어제 페이스북에 열왕기상을 묵상하면서 솔로몬 안티가 되어 간다고 올렸었다. 그런데 어느 한 분이 댓글에다가 '솔로몬과 우리가 다른 것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라고 달아주셨다. 정말로 맞는 말이다. 나 또한 하나님을 제한하고, 내 작은 머리로 하나님을 작게 보며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나를 어떻게 구언해 주시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케 하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솔로몬에게도 나에게도 우리는 모두 복음이 필요하다. 솔로몬과 내가 무엇이 다른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하나님을 작게 보고, 제한하고, 그 크고 광대하신 하나님을 내 작고 작은 어느 지점에서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인가를 해달라고 기도하는 존재로 여기지 않는가?
사도바울은 고전 3:16에서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정말 우주에서 먼지도 안되는 우리 같은 작은 존재들 안에 그 크신 하나님께서 오셔서 거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몸이 성전이고, 이 안에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신다. 복음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이시지만, 그렇다고 나만의 하나님은 아니시다. 온 우주의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인 것을 전해야 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고, 하나님이시며, 그 분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이 기쁜 소식을 말이다. 내 몸이 성전이다.
온 천하보다도 더 크신 하나님께서 이 몸에 거하시니, 이 몸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오늘도 그 분의 사랑과 복음을 기억하며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애써야겠다. 하지만 이 애씀조차도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저 주님이 거하시도록 내 몸을 내어 드리는 것,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 바로 그것이 오늘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이다. 분을 죽이고, 혈기를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자. 웃는 얼굴과 용서받은 자 로써 용서하자. 내 몸이 성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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