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18. 11. 2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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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8:1-11 말씀대로, 말씀 외에 아무것도 없는 삶으로의 초대

성전 완성 이후 언약궤는 제 자리로 돌아갔다 (1-5절). 언약궤 이동에 있어서 계속 반복되는 단어는 ‘메다’ 이다. 1절, 2절, 4절 계속해서 연약궤를 메고 올라감을 보여 준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임을 이야기 하고 있다. 솔로몬은 다윗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옮기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신대로 행했다. 말씀대로 순종했다. 

언약궤 안에는 무엇이 있길래 그렇게 소중하게 옮겼을까? 9절에서 '그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니’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 돌판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아온 말씀이 적힌 판이다. 즉 그렇게 귀중하게 옮긴 그 안에 실제적으로 담겨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9절에서 가장 확실하게 말하고 있다. ‘두 돌판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그렇다.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 이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삶에도 그 약속과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우리의 믿음의 실제이다. 

그리고 10-11절에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했다. 예전에는 하나님이 성전 건축을 기뻐하셔서 그 안에 가득하게 임재하신다고만 생각했다. 타이망상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열왕기상 말씀을 보며 느끼는 것은 성전건축이 완성되어서 하나님이 기쁘셔서 그 안에 영광으로 임재하신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여 궤를 메어 옮기고 (1-5절), 그 궤 안에 말씀 이외에 아무것도 없는 데 언약궤를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임재하여 주신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즉 말씀대로 순종함과 앞으로도 그 말씀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 것을 다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그 영광을 보여주신다. 성전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우리의 전 존재가 하나님 한 분으로 기뻐하는 것,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 외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그것에 우리의 전 존재를 드리는 것을  기뻐하신다. 율법적인 순종함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사랑에서 우러러 나오는 순종을 기뻐하신다. 

나도 오늘 내 삶에 그러한 순종이 먼저 있기 원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먼저 사랑함으로 순종하기 원한다. 궤를 어깨에 매든 손으로 들든 무슨상관인가? 라는 내 이해의 방식의 순종이 아니라 그것이 내 이해의 범위를 벗어나거나 혹은 비상식적으로 생각되더라도 그것에 기쁨으로 순종하기 원한다. 말씀에 대한 순종은 이해를 넘어서야 한다. 이해가 먼저가 아니라 순종이 먼저이다. 두 번째로 내 삶에서도 오늘 말씀과 약속 이 외에는 아무것도 없기를 원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외의 것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쫓고 있는가? 말씀을 가장 소중히 여기기 원한다. 태국 성경을 계속 보고 있다. 지금 마태복음을 절반 정도 읽은 것 같다. 읽으면서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하기 보다는 공부의 대상으로 여기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오늘은 이것을 공부의 대상이 아니라 진짜 말씀으로 대하는 은혜가 있기 원한다. 

오늘을 주님께 의탁드리며 주님의 은혜가 있기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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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