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19. 2. 20. 14:41
728x90
반응형
20190220 시 109:1-31 나는 기도할 뿐이라

오늘 시편은 다윗의 시편이다. 다윗의 인생을 생각해볼 때 다윗이 이렇게 저주할 만한 사람이 도대체 누굴일까 궁금할 정도로 깊은 저주와 속상함이 나타난다. 6-20절에서 진심으로 화가나서 고백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 사람에 대한 분노가 그의 아내와 자녀들까지 저주하게 만들고 있다. 다윗이 왜 이럴까 하는 마음은 4절에서 해결된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다윗의 이 모든 저주는 성냄은 화냄은 그의 기도안에서 하나님께 아뢰고 있는 내용일 뿐이다. 정말로 그를 찾아가서, 그의 가정에 대해서 저주하고, 성내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말하는 것이다. 그의 분노와 화냄과 성냄을 하나님 안에서 기도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기도할 뿐이었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함으로 느껴진다. 살아가다 보니, 여러가지 일에 얽히다 보니 분노하고 화가 나고, 그 화가 여전히 내 안에서 소화되지 않고 가지고 살아갈 때가 있다. 그래서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속상함을 토로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내가 다윗에게 배우는 것은 ‘기도할 뿐이다’ 라는 것이다. 

이 위까지 묵상을 하고 비행기를 탔고, 방콕에 내렸다. 
이제 집에 가겠다는 기쁜 마음으로 이민국을 통과하려는데 이민국 직원이 나를 잡았다. 내가 정식 비자가 없는데, 여러번 비자 연장을 위해 해외로 다녀온 것을 빌미로 삼는 듯 했고, 여권과 내가 비자를 받기 위해 종교국에 제출한 서류를 달라고 하더니 나를 한 구석으로 데려갔다. 앉아서 한참을 조사하고 기다리게 했고, 형제교단 비자 담당하는 자매와 통화하며 최근에 종교국에서 나온 허가 서류를 라인으로 받았고, 그 서류를 보여줬다. 설명이 안 통하는 느낌이었지만 방금 받아 보여준 서류가 적절했는지 이민국 프로그램에 그 서류에 기재된 모든 것을 기록하는 듯 하더니 대략 한 시간만에 보내줬다. 

그 한 시간 동안 수 많은 마음이 교차했다. 비자서류가 진행중이라고 설명하고, 증거로 복사된 서류를 제출했는데도 왜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이렇게 붙잡아 두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취급하는걸까? 나는 나 스스로를 태국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이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구나…(사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선교사로 이 곳에 있는 것이 저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면서 내 안에서 쓴 마음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나를 거부하면 나도 여기 안 있는다. 다른데 가야되나 보다. 나도 오라는데 많다.’ 등등의 근거와 상관없이 쓴 마음에서 올라오는 별 생각이 다 들었었다. 집에 돌아와서 다시 묵상을 하기위해 말씀을 펴며 비행기 타기전까지 보았던 다윗의 고백이 기억났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정말 오늘을 위한 말씀을 아침에 받았음에도 그 순간 다윗과 같이 기도하기 보다는 분노와 쓴 마음들이 나를 사로잡고 있음을 보며 회개했다. 나는 이 영혼들을 위해 온 선교사인데, 조그마한 거절과 내가 원치않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그 속에서 그들에게 분노와 쓴 마음들을 가지는 연약함을 보면서 내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사실 자주 하는 생각이다). 정말 내가 사랑하는 것이 내가 인정받고, 내가 환영받는 그 상황과 나를 환영하는 그 사람들인건지… 복음을 거부하는 것 뿐 아니라 나를 거부하는 듯한 하지만 끝까지 사랑해야 하는 그들인건지… 예수님도 예수님을 거절하고 거부하는 모든 사람들을 품으셨지 않는가?

오늘 정말 '나는 기도할 뿐이라'이 말씀이 내 삶 속에서 고백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길 원한다.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들이 나를 거부하고 힘들게 하더라도 여전히 나는 그들을 사랑하며 기도하길 원한다. 내가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이 거절 당하고, 거절 당하면서도 그들을 사랑하는 자리임을,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임을 잊지 말자.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