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19. 2. 1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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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07:1-9 사모하는 영혼으로 살아가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들에게 속량(redemption)을 행하신다 (2절). 
하나님이 근심 중에 부르짖는 자를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에 이르게 하신다 (6-7절)
기적을 행하신다 (8절)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함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 (9절)

짧은 시편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노래하고 있다. 모든 시편의 구절들이 좋았지만 특별히 더 마음에 와 닿았던 구절은 7절에서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였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마름과 영혼의 피곤함을 아신다 (5절). 아시는 것 뿐만 아니라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원어를 보니 바른이란 단어는 ‘야샤르’라는 히브리어로 ‘똑바르다 (straight)' 의 의미와 ‘의롭다 (righteousness)’의 뜻을 모두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목마르고, 영혼의 피곤함이 있는 자들에게 아마도 물을 먹을 수 있는 아주 똑바른 길과 영혼의 연약함을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채우신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이렇게 해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

하지만 9절을 보면 그렇게 채우실 것의 전제 조건(?)은 그렇게 채우시기로 한 대상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모하는 영혼’이다. 이것은 은혜 받을만 한 자에게만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께 우리가 사랑을 드렸으니까 하나님께서 채우신다는 행위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을 기대하고 사모하는 영혼이란 뜻으로 여겨진다. 심령이 가난하고, 마음이 겸손하여 하나님을 바라는 자들을 아마도 사모하는 영혼이라고 표현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한 자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만족함과 채워짐을 주신다. 

어제 밤에 아내랑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묵상을 하며 어제 나눔을 생각하면서 정말로 감사했던 것은 아내도, 나도 지금 사모하는 영혼으로 서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상황과 환경, 그리고 우리의 소원함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빚어가고 계심을 느끼게 된다. 지금 당장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만족과 좋은 것이 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그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 두렵기도 하고, 앞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도 하고, 우리의 기질과 생각이 성숙하지 못해 속상한 일도 많지만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 씩 내딛고 있다.

정말로 우리의 영혼이 계속해서 사모하는 영혼이 되기를 원한다. 삶에 기적이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들에게로 간 이스라엘 백성과 같지 아니하고, 날마다 날마다 주님을 더 사모하는 영혼이 되기를 원한다. 당장 해야 할 일들이 잘 보이는 반면에 아직 큰 그림이 잘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도 하다. 하지만 기쁨으로 아내와 이 길을 갈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사모하는 영혼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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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