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19. 3. 1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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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4:35-41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제대로 알아야 내 태도가 결정된다. 

유명한 본문이다. 광풍이 일어 제자들이 무서워 할 때, 예수님은 배에서 주무시고 계셨고, 제자들은 죽을까봐 예수님을 깨웠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꾸짖으시고, 광풍을 잠잠하게 하셨다. 잘 아는 내용이지만 찬찬히 읽을 때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은 마지막 41절이었다.

  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도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그들이 정말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을까? 그들은 그물도, 배도, 가족도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았던 제자들이 아닌가? 예수님을 몰랐다기 보다는 그들의 기대와 생각에 합한 예수님을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유대인들이 기다렸던 정치적으로 자신들을 독립시켜 줄 그런 메시아…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렸는데, 이 분은 바람도 바다도 잔잔케 하시는 분이였다. 

예수님을 누구로 보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라고 보여진다. 이 세대에서도 예수님을 여러 면으로 두고 그 분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이용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체 게바라와 같은 혁명의 전사로, 어떤 사람은 도덕적인 스승으로, 또 어떤 사람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시는 램프의 지니와 같은 존재로 예수님을 축소 시키고, 자신의 기대와 생각에 부응하는 존재로 예수님을 사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절망 앞에 섰을 때 제자들은 여전히 그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게 되었다. 그가 진정 누구이신지 모르기에 그들의 믿음도 작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때에 가서야 순교도 불사하는 진정한 사도들이 되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기대하는 예수님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정말로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 나는 그 분을 누구라 하는가?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말씀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이셨다. 그래서 그 분도 말씀을 통해 파도를 잠잠하게 하셨다. 혹시 나는 예수님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려고 하지 않는가? 내 안에도 예수님을 구원자가 아니라 내 삶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 동기들이 있다. 이러한 동기들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예수님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내가, 오늘 하루가 되기 원한다. 그래서 ‘그가 누구이기에’라는 질문을 던지는 자가 아니라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고백이 내 삶에 나타나기 원한다.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순간 순간에 나의 신앙 고백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오늘 하루가 되기 원한다. 하나님의 능력이신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바람도 바다도 순종하는데.. 나는 순종을 선택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 순종하는 그 하루가 되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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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