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19. 3. 1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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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5:1-20 결국은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사랑)이다. 

만약 한 영혼과 돼지 한 마리의 가치를 이야기 하라고 하면 아무런 고민없이 한 영혼이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돼지의 숫자가 자꾸 올라가서 2,000마리가 된다면… 그 귀신들린 한 영혼이 돼지 2,000마리보다 더 소중하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의 마음 안에서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돼지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들어갔으면 안 되었을까? 그 한 영혼이 귀신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된 것은 참 감사한데, 돼지 몇 마리로만 들어가도록 허락 하셨으면 안 되었을까?

한 영혼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 것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도대체 돼지 몇 마리면 안 아까웠을까? 한 영혼과 바꿔도 안 아까운 돼지의 숫자는 몇 마리로 생각할 수 있을까? 한참을 생각했는데, 적절한 숫자가 떠오르지 않았다. 돼지가 몇 마리 안되면 사람의 영혼이 이렇게 싼건가 싶고, 돼지가 많으면 너무 많은 것 같고… 이렇게 하면 영혼을 경시하는 것 같고, 저렇게 하면 물질주의자 같고… 그래서 포기했다.

그런데 만약 그 한 영혼이 내 영혼이라면? 혹은 내 가족이라면? 나와 관계가 있는 친한 사람이라면? 내가 돼지 2,000마리를 아까워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돼지 2,000마리와 영혼의 가치를 계산한다는 그 자체가 그 영혼과 내가 상관이 없기 때문이었다.상관이 없다는 것은 사랑이 없다는 것이고, 관심이 없다는 것이고, 그 사람이 어떻게 되든지 나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영혼이 어찌 되냐보다도 돼지 2,000마리의 가치가 커 보였던 것이다. 마치 예수님이 머리위에 값 비싼 나드 향유를 부었을 때 가롯 유다의 고백처럼 말이다.

요 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그 여인의 관심은 오직 예수님께만 있었고, 예수님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아깝지 않았다. 그래서 그 값 비싼 향유를 깨뜨려서 예수님께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가롯 유다는 그의 관심이 예수님이 아니라 돈에 있었다. 그래서 그 향유만 보고도 얼마라는 계산이 바로 나온 것이다. 마치 오늘 아침에 내가 묵상할 때 돼지와 영혼의 가치를 계산하려고 시도했던 것 처럼 말이다. 

결국엔 관계인가 보다. 예수님과의 관계, 잃어버린 영혼들과의 관계
그 관계가 정말 사랑의 관계라면 우리는 다른 것들을 얼마든지 아깝지 않게 쓸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 영혼을 위해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의 관계가 없어지면 그러한 일들이 낭비가 되고 만다. 그러니 아까운 것이다. 돼지 숫자도 아깝고, 향유도 아깝고… 다 아까운 것이다. 

오늘도 예수님과 이웃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 것을 쓰기에도 아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가? 
예수님은 이미 답을 주셨다. 

마 22:37-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결국 해답은 사랑이다. 관계의 중심은 사랑이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오늘도 그렇게 하나님을 이웃을 사랑하며, 아깝지 않을 만큼 그들을 사랑하기 원한다. 계산하지 않고, 재지 않고, 사랑하기 원한다.
아이들에게도 큰 소리 내지 말고 인내로 참고 견디자. 나에게서 아이들이 사랑을 보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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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