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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3:1-19 예수님과 같이 생명을 살리는 일에 관심을 가지자.

안식일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예민한 문제였다. 안식일을 처음 주신 하나님의 의도와 상관없이 율법화 시켰다. 안식일에 참된 안식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날 조차도 율법의 계명 가운데 얽매이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 가시니 (1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 주시하고 있었다 (2절).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보고 그냥 가실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은 생명에는 관심이 없었고, 율법에만 관심이 있었다. 생명이 살아나는 일 보다는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하는가? 혹은 하지 않는가가 그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하나님의 자녀가 참 안식으로 들어가는 일은 뒷전이고, 율법적으로 지켰는데, 혹은 어겼느냐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예수님은 그러한 그들의 논쟁에 얽매일 수 없었다. 왜냐하며 예수님은 생명을 구하러 오신 분(5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예수님의 행동을 보고 있는데도 그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셨다 (5절). 예수님의 사명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가 예수님의 행동을 이끌어 나간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알았기에 예수님은 그 길을 걸어가실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과 같이 생명에만 관심이 있는가?아니면 생명이 아니라 다른 부수적인 것에 관심이 있는가? 매우 핵심적인 질문이면서 매우 두려운 질문이다. 왜냐하면 자주 생명보다는 다른 것들에 마음을 쓸 때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사람들의 평가가 생명보다 더 우위에 놓여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지만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만족시키려는 마음 뿐 아니라 사람들을 두려워 하는 마음도 많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비난과 심지어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 속으로 생명을 살리기 위해 걸어 들어가셨다. 이것이 내가 붙잡아야 할 본이다. 나는 우리 형제, 자매들을 나의 사역을 펼칠 장으로 보는가? 아니면 생명으로 보는가? 내가 섬기고 있는 영광교회를 생명을 살리는 곳으로 함께 섬기고 있는가? 내 마음의 동기를 다시 한번 점검한다. 생명을 위한 것이 아닌 다른 동기들은 내려놓고, 오직 생명을 살리기 위한 동기로 움직여지는 내 삶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특별히 요엘이에게도…) 아빠가 자신의 힘들었던 삶의 기억에 도움을 준 사람으로 남게 되기를 원한다. 오늘 오후에 비자를 받아서 다시 태국으로 돌아간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몰두하는 내가 되길 원한다.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일이 아닌 일에는 좀 덜 관심을 가지는 내가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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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