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9:13-29 완전한 중보자, 완전한 의인 예수 그리스도
1. 우리는 죄인이다. 언제부터 죄인이었냐의 문제가 아니라 계속 죄인이었다. 24절에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여 왔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언제부터 아셨는가? 영원부터이다. 우리는 그때부터 여호와를 거역하는 죄인이었다.
2.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모세가 중보를 한다. 그런데 모세도 마찬가지로 죄인이었다. 모세는 27절에서 자기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을 언급한다.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들이다.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사 이 백성의 완악함과 악과 죄를 보지 마옵소서"
3.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삶이 어땠는가? 굳이 비교를 하자면 나보다 나았던 점도 있지만 나보다도 연약한 지점도 있었던 연약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왜 그들의 이름을 거론했는가?
4.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떻게 잘해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저 은혜였고, 그저 사랑이었다.
5. 지금의 우리는 더 이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이름을 대면서 우리를 생각해 달라고 하나님께 외칠 필요가 없다. 그들과 모세와 다른 완벽한 중보자요, 완벽한 우리의 죄를 가려주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옆에 계시기 때문이다.
6.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시던 그 날 부터 죄인이었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더 이상 우리의 완악함과 악과 죄가 하나님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모세도,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직접 찾아오셔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 이것이 기쁜 소식, 복음이다.
7.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죄인임을 잊지 않는 것..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무엇인가를 해서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 나는 그저 용납되었고, 그저 사랑받고 있다는 그 사실을 아는 것… 하지만 그것을 아는 것이 나에게만 적용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확장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8. 오늘도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고,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고 싶다. 끝이 없이 절망적인 내 삶을 회복시킨 그 사랑이… 이제는 나 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타인들도… 심지어 매일을 티격태격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 복음의 사랑이 나를 통해 흘러가기 원한다.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이 가장 기쁜 소식의 순간이 된 것 처럼… 오늘도 복음의 소식과 감격이 내 안에서 계속 메아리치길…
9. 복음만이 나를 사로잡고… 복음만이 내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길… 너무 안되지만.. 정말 아는대로 믿는대로 살아가는 하루 되길…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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