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26-38 터닝포인트는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임재다.
1.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했고, 그 시절에 처녀가 아이를 베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천사는 그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2. 은혜를 입었으면 오히려 문제가 해결되고, 어려운 일들이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야 평안이 임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도 천사는 마리아에게 평안하라고 이야기 한다. 곧 죽을지도 모르는 처녀에게 평안하라고 말한다 (28절).
3. 그녀가 평안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잉태됨이 아니었다. 그녀의 문제가 해결됨도 아니었다. 그녀가 평안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다음에 나오는 파트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이기 때문이다 (28절).
4. 상황이 나를 평안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 문제가 없어서, 문제가 해결되어서 평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평안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5.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그제서야 우리는 평안할 수 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아무런 상황이 변하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평안할 수 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엘리사벳도 아이를 가질 수 있다 (36절).
6. 결국은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느냐 하시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결국은 내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느냐 아니면 이미 임재하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느냐의 문제이다. 상황이 변하고 변하지 않고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
7. 지난 송구영신 예배를 가정예배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 가족에게 주신 약속이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는다. 약속은 신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붙잡아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그 약속이다.
8. 마리아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했다. 더이상 처녀가 아이를 가지는 것은 그녀에게 두려움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마지막에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한다. 인생의 변화는 상황의 변화가 아니다. 임재다. 임마누엘이다.
9.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한 그 약속을 붙든다. 그 임마누엘로 인해 오늘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내 상황 가운데서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길 원한다.
10. 임마누엘,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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