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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3:13-25 누구의 인정을 받기 원하는가? 

1. 예수님은 이스라엘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들의 고소와 참소를 통해 빌라도에게서 헤롯에게로, 또 헤롯에게서 빌라도에게로 옮겨진다. 

2. 모인 무리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를 원했고, 예수가 죄가 없음을 이야기하는 빌라도의 3번의 변호에도 여전히 그들은 강경했다. 죽일 죄가 없는데도 (22절) 군중들의 큰 소리가 죄 없는 예수를 집어 삼켰다 (23절).

3. 그리고 빌라도는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26절) 라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다. 그는 3번의 변호에도 여전히 강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대제사장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기에 죄가 없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4. 다른 사람들의 시선, 인정을 구하는 빌라도의 연약한 모습이었다. 이스라엘 지역의 총독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폭동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5. 때로 옳지 않은 일에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혹은 인정을 받기 위해 빌라도와 같은 행동을 할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평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삶의 ‘인정의 우상’이다. 빌라도는 하나님을 몰랐기에 그가 하나님의 아들을 눈 앞에서 보면서도 ‘인정’이라는 우상을 섬겼다. 

6. 하나님을 아는 나의 모습은 어때야만 하는가? 누구의 인정이 중요한가? 사람인가? 하나님인가? 사도 바울도 같은 고백을 한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7. 나는 스스로 잘 알듯이 ‘인정의 욕구’가 충만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빌라도의 오늘 행동이 아주 잘 이해가 된다. 오늘 나는 누구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살고, 행동하고 있는가? 빌라도 처럼 군중들인가? 나를 인정해 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 한 분인가? 

8. 사람들의 인정은 늘 변한다.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내가 하는 것이 그들의 필요에 부합하느냐에 따라 변한다. 맞추기가 어렵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정은 나의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인정은 나의 존재로 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그의 자녀이기에, 내가 그의 아들이기에 그 분은 오늘도 나를 인정해 주신다.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엡 2:8). 

9. 하나님은 이미 나를 인정하신다. 사랑하신다. 그래서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셨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더 이상 빌라도와 같이 사람의 인정을 구하며 살지 말자. 오직 나를 이미 인정해주신 하나님만 붙들자. 그 복음만 붙들고, 그 복음이 내 삶에 현실이 되도록 살아가자.

10. 코로나로 인해 모든 형태의 사역의 멈췄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교회 개척 준비가 줌 (온라인 화상회의)으로 진행이 되고 있다.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교회 개척이 되기를 원한다. 복음이 충만한 교회가 개척될 수 있도록 함께 준비를 잘 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이 복음이 우리 태국의 형제, 자매들에게 잘 흘러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11.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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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