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20:19-31 표적이 아니라 임재가 더 중요하다.
1.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나타나셨다. 도마를 제외한 제자들에게는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다 (20절). 그리하여 제자들은 주를 보고 기뻐하게 되었다 (20절). 문제는 도마였다. 그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 함께 있지 아니하였고, 예수께서 부활하셨음을 믿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그런 도마에게 다시 나타나주셨고, (26절) 그런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2.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목적은 도마가 믿음 있는 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3. 사도들 이후의 모든 세대는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도마는 그래도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경험이라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것조차도 없는 연약한 사람들일 뿐이다.
4. 하지만 여전히 도마와 같은 우리 세대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나타나서 말씀하여 주신다. 방법은 여러가지일 것이다. 기도 중에, 예배 중에, 묵상 중에 주님을 만난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믿는 자가 되기를 바라셨다.
5. 오늘도 주님을 만나고 있는가? 오늘도 믿음 없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주님을 만나고 있는가? 모든 방법을 뛰어넘는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가? 만나지 않고서는 믿는 자가 될 수 없다. 만나지 않고서는 사랑할 수 없다.
6. 늘 도마가 믿음이 없는 아이콘 같았다. 반면에 나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고, 적어도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도마가 했던 표적을 구하는 기도(?)는 나도 때로는 하는 기도 아닌가? 이렇게 해주시면 하나님 뜻으로 알겠습니다 혹은 저렇게 해주시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알고 가겠습니다 등등 말이다.
7. 하나님은 늘 나에게 말씀하시고, 늘 내 옆에 계시고, 늘 나를 인도하시는데도 여전히 나는 표적을 구한다. 표적이 중요한게 아니라 임재가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한 도마는 그 옆구리와 손의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지 않고서도 예수를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하게 된다 (28절)
8. 오늘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는가? 그 임재 가운데서 믿음을 경험하고 있는가? 덮어놓고 믿는게 아니다. 경험해야 하고, 알아야 하고 이해해야 한다. 오늘 그 임재 가운데 들어가기 원한다. 일에 치이고, 시간에 쫓기고, 할 일에 쫓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걸어가는 하루가 되기를 원한다.
9.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서 믿음이 변하고, 시선이 변하고, 생명을 얻는 하루가 되기 원한다. 그리고 더 깊은 임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시간의 거룩한 낭비가 있는 하루가 되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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