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8:12-27 어떤 부인을 할 것인가?
1. 베드로의 부인의 모습은 사실 너무나도 잘 아는 모습이다. 그의 부인은 사실 새로운 것이 없다. 왜냐하면 날마다 매일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2. 그가 예수를 부인할 때 했던 말은 17절을 보면 “나는 아니라” 였다. 이 말은 세례요한이 했던 말과 동일했다. 요 1:21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아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3. 동일한 말이지만 부인한 이유가 달랐고, 그 말 속의 의미도 달랐다. 세례요한의 부인이 not I, but Christ 였다면, 베드로의 부인은 not Christ, but me 였다. 세례요한은 자신을 추종하려는 세력들 앞에서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님을 당당히 말하였다.
4. 베드로는 자신의 스승 그리스도를 잡은 자들이 자기도 잡으려고 하자 그것이 두려워 자신이 그 분의 제자가 아니라고 부인한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얼마나 자주 내 삶에서 일어나는가? 세례요한과 같이 자기를 부인하고자 하지만 더 많은 순간 베드로와 같이 내가 그 분과 함께 자임을 부인하지는 않는가?
5. 고난 주간에 베드로의 부인을 보면서 나의 연약함이 떠오른다. 내가 얼마나 약하고 부족한 사람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원하고, 그리스도를 따라가기 원하면서도 더 많은 순간 그 분을 부인하고, 내 자신의 유익을 쫓는 것이 나의 삶이 아닌가?
6. 하지만 베드로의 부인과는 다르게, 예수님은 당당하셨다. 대제사장 앞에서도 해야 할 이야기를 하셨다. 세례요한도 마찬가지로 당당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자신들이 본 것을, 자신들이 아는 것을, 자신들의 진실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으로도 가릴 수 없는 진실과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의 삶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7. 어떻게 살 것인가? 진실로 주님을 따르며 당당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비굴하고, 목숨을 얻기 위해 거짓을 말하며 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부인할 것인가?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요 12:25
8. 삶에서 베드로의 부인이 아니라 세례요한의 부인이 있기를 원한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하고, 나의 생명을 위한 길이 아니라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 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좁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가는 자가 되기 원한다. 지금은 그럴 힘과 능력이 없을지라도, 계속해서 그렇게 주님의 뒤를 따라가기 원한다.
9. 주님 베드로와 같은 저를 도우소서…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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