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12:1-8 하나님의 손이 아니라 얼굴을 구하는 자
1. 어제 본문에 따르면 르호보암의 나라가 하나님을 쫓는 자들로, 예배하기 원하는 자들로 인해 강해졌다. 하지만 그러한 강하여짐은 르호보암으로 하여금 교만하게 만들었다. 르호보암의 교만은 단순한 한 사람의 교만 그 이상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한 나라의 리더였기 때문이다.
2. “르호보암의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매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1절) 하나님을 의지해서, 사랑해서 얻은 강함이 오히려 하나님을 등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모습은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따라하도록 만들었다.
3.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르호보암이 여호와의 율법을 지켰던 이유는 사랑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들이 율법을 지켰던 이유는 그들의 안전과 강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4.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율법을 지킨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시는 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강하여졌더라도 계속 율법을 지켰을 것이다.
5. 이렇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을 ‘기복신앙’이라 한다. 복을 구하는 신앙이다. 하나님이 복 그 자체이신데도 그 하나님께 다른 복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영원한 생수에게 가서 먹고나서 목이 마른 다른 물을 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
6. 이것이 르호보암의 모습이고 또 나의 모습이다. 언제든 나의 유익만 채워지면 나의 필요만 채워지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온데간데 없다. 하나님을 이용하고, 또 이용한다. 사역에서도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7. 하지만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는 결코 멸하시지 않는다. 마치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을 멸하지 않으신 것 처럼 말이다 (7-8절). 지금 나는 무엇을 간구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얼굴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손(나의 필요)인가? 손이 아니라 얼굴을 구하는 자가 되기 원한다.
8.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나의 초점을 맞추기 원한다. 코로나가 잠잠해질 줄을 모른다. 태국 전역은 2,000명이 넘고 방콕은 계속 1,000명 가까이 감염자가 나오고 있다. 전화와 라인을 통해서 계속 심방하고 하나님의 손이 아니라 얼굴을 구할 수 있도록 성도들을 격려하자.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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