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 아랫쪽에 기도제목 있습니다
창 9:18-29 죄의 파티 속에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1. 급진적 예배를 드리던 노아는 어디로 가고, 오늘의 노아는 술취해서 벌거벗고 자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보면 그에게는 어쩌면 대홍수의 트라우마가 있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2. 자신은 구원받았지만 자신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죽어버린 그 트라우마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 모든 사실을 잊기 위해서 술을 마셨던게 아닐까? 노아의 일탈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노아가 자신이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저주한다.
3. 자녀를 저주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가끔 요엘이가 깽판 부리고, 너무 계속 우길 때에는 화가 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엘이를 저주하거나 저주해보려고 한 생각도 해 본적이 없다. 이게 부모의 마음일텐데 노아는 왜 함을 저주한 것일까? 그리고 심지어 함도 아니고 함의 자녀 가나안을 저주하였을까?
4.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고 이해하기 쉽지 않은 본문이다. 묵상하며 든 생각은 이 본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란 것이다.
5. 무슨 말이냐 하면 노아가 술에 취해 자고 있을 때, 자녀들이 노아의 수치를 덮어 줄 때, 그리고 노아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녀들을 저주할 때, 이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의 모습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술 취해 자는 아빠, 그것을 보고 형제들에게 말하는 아들, 또 그 사실을 알고 자녀를 저주하는 아빠…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6. 심각한 상황이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의 일상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모습이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인용 하면서도 내 생각, 내 뜻으로 행하고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이 정말로 다른 이를 저주하길 원하셨을까? 하나님이 정말 믿음의 아버지가 술에 취해 옷을 벗고 자길 원하셨을까?
7. 아니다. 모든 것이 우리의 죄악된 모습에서 시작된 모습이고, 그 어느 모습 하나에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 오늘 본문은 그저 인간들의 죄악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본문일 뿐이다.
8.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께 묻지 않으면 오늘 본문같은 일들이 생겨난다. 술 취해 벗고 자게 되고, 자녀가 부모를 멸시하게 되고, 부모가 자녀를 저주하게 된다. 하나님을 찾고, 묻고, 듣고 있는가? 계속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 없이 살아가고 일 할 수 있는 것이 나의 모습임을 잊지 말자.
9. 어제 프레쉬 형제를 만났다. 무슬림 가정에서 자랐지만 석 달 전 즈음에 우리 교회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신년에 집에 다녀오면서 사단이 일어났다. 집에서 무슬림 의식에 참여하길 요구했는데 이 형제가 자신이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참여하기 어렵다고 가족들에게 이야기 했고, 이 일로 가족들과 큰 어려움이 생기면서 특별히 어제 만나게 되었다.
10. 프레쉬 형제에게 자신이 결단한 믿음을 이 상황 속에서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가족들에 대해서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마음으로 섬겨야 함을,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상충될 때에는 존중하는 태도로 거절해야 함을 나눴고,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당연히 이런 일이 생길 수 밖에 없음도 나누었다. 그리고 이 일이 ‘왜' 생겼는지 질문하기 보다는 ‘무엇을 위해서' 일어났는지를 찾아보자고 나누었다. 그리고 온 교회가 함께 기도하기로 하였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렇게 새롭게 믿음을 가지는 일이 너무 귀하고, 정말 기적과 같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11. 하나님은 이렇게 모든 자녀들을 돌보고 계신다. 언제나 임마누엘의 약속대로 함께 하신다. 우리가 해야할 결단은 프레쉬 형제처럼 묻는 것이다.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또 하나님께 묻고 들으면서 그 분과 함께 걸어나갈 때에 오늘과 같은 죄의 파티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2. 오늘도 샬롬
* 프레쉬 형제를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무슬림 가정에서 자랐지만 진리를 탐구하고 있었고, 저희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오늘 큐티의 내용처럼 지금은 가족들과 무슬림 의식 때문에 어려운 상황입니다. 프레쉬 형제가 바른 믿음과 사랑의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믿음이 강건하여지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샬롬
'생각(Thinking) > Medita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 12:10-20 합리성이란 우상을 버리려면 물어야 한다 (0) | 2022.01.25 |
---|---|
창 12:1-9 선교는 그의 문제이기 이전에 나의 문제이다 (0) | 2022.01.24 |
창 8:1-22 노아의 급진적(radical) 예배 (0) | 2022.01.18 |
창 7:1-24 한 사람의 바른 믿음의 대상과 의지함이 다른 이들를 구원으로 이끈다 (0) | 2022.01.18 |
창 5:1-32 자녀를 낳은 자와 하나님과 동행한 자 (0) | 2022.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