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 2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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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2:10-20 합리성이란 우상을 버리려면 물어야 한다


1.  약속의 땅에 기근이 들었다.  어울리지 않는 말이 서로 매치되어 있다. 약속과 기근은 함께 갈 수 없는 말이다. 마치 물과 기름, 행복과 불행이 같이 갈 수 없는 것 처럼 말이다. 약속의 땅은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는 곳이지 기근이 왠 말인가? 

2. 그런데 살짝 기근이 온 정도가 아니라 기근이 심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당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0절) 아브라함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을 버리고 그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다.

3. 그런데 그 땅의 첫 이미지는 기근이었다. 아브라함은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애굽으로 내려간다. 합리적이긴 하였지만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합리적’이라는 우상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온 것이다. 이 ‘합리적'이란 우상은 누구에게나 있다.

4. 때로는 이 ‘합리적'이라는 우상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 보다도 더 앞설 때가 많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가 이 ‘합리성'이라는 우상을 하나님 보다도 더 깊이 의지하기 때문이다. 

5. 약속과 기근이 함께 갈 수 없다는 생각 자체도 이 ‘합리성'에 기준한다. 우리가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약속의 땅에 기근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합리적인 방법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겠다는 약속이 아니다. 

6. 그 분의 약속은 그 분의 방법으로, 그 분의 능력으로 성취되는 약속이다. 내 생각과 내 이유를 만족시키면서 성취되는 약속이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스케일은 하나님의 우주보다 더 큰 스케일이지 내 머리 속의 생각의 스케일로 작아질 수 없다.

7. 하나님 안에서는 약속과 기근은 얼마든지 함께 공존할 수 있다. 행복과 불행도 함께 공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약속을 하신 분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그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합리성을 벗어났다고 해서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방법을 벗어났다고 해서 두려워하며 나의 합리성을 앞세워서 애굽으로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8. 나의 합리적 판단이 하나님보다 옳을 수 있겠는가?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판단보다 옳을 수 있겠는가? 내가 하나님보다 지혜로울 수 있고,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그 대답이 Yes이면 스스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살아가면 된다. 하지만 그 대답은 누구도 Yes일 수 없다. 우리의 삶은 합리성이 아닌 들음으로 시작되어야 하고, 들음이 모든 것의 중심이자 시작이 되어야만 한다. 

9. 합리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묻기 원한다. 그리고 듣기 원한다. 들을 때에 우리와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우리는 그 분이 인도하시는대로 나아갈 수 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삼상 3:9)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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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