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 16:1-11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삶
1. 성경은 모세에게 반역을 꾀한 세 명에 대해 그 지파부터 시작하여 그 조상들의 이름까지 거명한다.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1절).
2. 당을 짓는다는 것은 모세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아 자신들의 세력을 만들어낸 것으로 2절을 보면 그들은 이름 있는 지휘관 250명을 모은다.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 (2절)
3. 그들의 반역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리도 충분히 자격이 있는데 왜 너희만 잘난 척 하느냐 인 것이다.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3절).
4.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그들이나 모세와 아론이나 크게 다를 것 없다. 같이 나고 자랐고, 같은 민족이고, 자신들도 충분히 모세나 아론같이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특히나 공평에 대해 이야기 하는 요즈음 시대에는 어쩌면 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5. 그러나 우리 세대가 추구하는 기회의 공평과는 다르게 성경은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선택은 그 사람의 어떠함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하나님의 선택이다.
6.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고라와 그의 모든 무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그 사람을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되 곧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오게 하시리니" (4-5절).
7. 하나님의 선택이란 사실 이해하기 쉬운 개념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오늘 이스할, 다단, 온과 같은 질문이 떠오를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당신만 선택하시고, 나는 아닌가? 우리가 뭐가 부족한가? 우리도 당신만큼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부르심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부르신 자, 하나님께 달린 것이다.
8.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다르게 다른 자리로, 다른 은사로 부르셨다는 것이다. 나를 부르신 자리에서 충성하면 그것이 좋은 것이고,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굳이 다른 사람의 부르심의 자리를 탐내거나, 비난하거나 할 필요가 없다. 성경이 이야기하진 않더라도 이스할, 다단, 온에게도 자신들만의 부르심의 자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부르신 부르심의 자리 보다는 다른 자리를 비교하여 탐하고, 또 모세를 비난하고, 무시하였다.
9. 하나님은 세상을 보시기에 아름답게 창조하셨다. 그의 부르심의 자리가 아름다운 것 처럼 나의 부르심의 자리도 아름답다. 비교하려고 하지 말고,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충성하며 지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칭찬하실 것이다. 그러나 나의 부르신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부르심과 비교하고, 그 사람들을 무시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다. 나를 부르신 자리를 알고, 나를 부르신 자리에 충성하는 자가 되기 원한다.
10. 이제 곧 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다시 나의 부르심의 자리에서 충성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하고, 또 오늘을 다른 이들과 비교하지 않으며 충성스럽게 살아가기 원한다.
11.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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