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6:1-12 표적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인 것이다
1.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 표적을 구한다. 하지만 그들이 구하는 표적은 진정 예수가 누구이신지를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예수를 시험하여 넘어뜨리기 위함이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이기를 청하니" (1절)
2.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표적을 구하는 이유는 아마도 정확히 분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이미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답을 정해놓고 예수께 표적을 구하였다.
3. 심지어 그들은 이미 칠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하지 않았는가? (마 15:32-39) 답을 정해놓고, 시험을 하기위해 물으니 기적을 보아도, 병자를 고쳐도 그들은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주시기로 한 표적은 요나의 표적이었다. 요나의 표적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으로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밤낮을 있었던 것 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죽으시고 사흘 후에 부활하실 거란 이야기다.
5. 예수님은 그들에게 결국 그 표적을 보여주신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믿지 않는다. 믿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 자신들이 답을 정해놓은 사람들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여도, 모든 악한 것과 약한 것을 고치셔도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어 모든 영혼들을 대속해도 믿지 않는다.
6. 믿음이란 신비한 것이다. 그래서 믿음 또한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열리면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이 닫혀 있으면 그 어떤 놀라운 기적을 보더라도 우리는 믿지 아니할 이유를 찾게 되는 것이다.
7.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함이다. 내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이고,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달을 때, 나의 힘으로 내 자신을 조금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때, 우리는 마음이 겸손하여 하나님 만나길, 우리의 구원자를 만나길 소망한다. 하지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처럼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고, 나는 충분히 나를 구원할만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어디 한번 해봐라 라는 모습으로 그리스도를 볼 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믿어지지도 않을 수 밖에 없다.
8. 나는 오늘 어떤 부류의 모습으로 서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나의 존재를 정확하게 보며, 내가 나의 구원에 어떠한 것도 기여할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영원한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고, 이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있어도 없어도 괜찮은 존재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표적을 구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다. 표적은 이미 2000년 전에 십자가 위에서 다 보여졌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들이 자신의 생명을 걸고 그 부활을 증거하지 않았는가? 지금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지 않은가? 표적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이다. 표적을 구하려고 하였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12절).
9. 표적이 아니라 나 자신을 점검하기 원한다. 나의 존재의 가벼움과 절망을 더 깊이 깨닫게 되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 Not i, but Christ를 경험하게 되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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