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4. 1. 29.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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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9:1-12 복음으로 생각하기

1.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가다가 날 때 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셨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1절) 그런데 그 다음 질문이 살짝 이상하다.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까 자기이니까 그의 부모니이까?” (2절)

2. 그들의 사고에서는 나면서 부터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이 누군가의 죄로 인함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질문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이상하게 들리지만 그 시대에는 가능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3. 그러나 이 질문은 무척이나 율법적인 질문이다. 율법을 지키면 복을 받고 율법을 범하면 벌을 받는다는 컨셉을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율법적인 질문을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께 물은 것이었다. 

4.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역시 제 3의 대답이었다. 복음은 항상 율법적인 Yes와 No의 문제에 갇히지 않는다. 3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5.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작은 사고 즉, “잘했냐, 못했냐, 맞냐, 틀리냐”의 문제를 넘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만든다. 복음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선택,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구원에 조금도 더하거나 뺄수 없는 것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은 우리의 경직된 사고를 넘어 하나님을 보게 하시는 능력이다. 

6. 결국 이 날 때 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은 오늘 눈을 뜨게 된다 (6절). 그리스도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누구의 죄인지의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라면 여전히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이라는 것을 얻어내려고 계속해서 노력했을 것이다. 

7. 그러나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우리의 구원에 전적으로 무능한 존재라는 것을, 우리의 생각에 조금도 선한 것이 없으며, 율법적인 사고를 조금도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8. 복음의 길을 걸어야 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 이전에 생명을 살리는 것이 복음이다. 진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진리이다. 그러나 그 진리로 논쟁을 하기 보다는 생명이 살아나는 일을 위해서 우리의 삶을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닐까? Egeiro Club을 3:30-6:00까지 운영중이다. 커피숍 운영시간을 3:30 으로 단축시켜가며 까지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그 학생들 중에 5명이 어제 예배에 참석했다. 보통은 예배 끝날 때 즈음에 오는데 어제는 일찍 와서 처음 예배부터 참석하였다. 아직 이 친구들이 어떤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하는지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위해 베풀고, 나누고, 사랑할 때 그들이 뭔가 느끼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9. 이 아이들에게도 복음의 길, 사랑의 길을 계속 나누고 싶다. 지금은 껄렁껄렁 와서 놀다가 가고, 게임하다 가고 하지만 우리가 이들을 판단하지 않으며 우리가 생명을 살리기 위해 복음으로 살아가며, 복음으로 변화된 우리의 삶을 보여줄 때 이 친구들이 복음으로 변화될 것을 믿는다. 

10. 오늘도 샬롬

*어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아이들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사진에 동그라미 안에 있는 친구들이 어제 예배에 나왔던 5명 중에서 세 친구들 입니다. 사진은 Egeiro Club때 모습입니다. 계속 잘 관계를 맺어가며 사랑할 수 있도록,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어제 저의 생일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셔서 감사드리고, 한 살 더 먹은 만큼 더 진중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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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