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9:13-23 사랑하는 자의 자리
1. 율법은 항상 율법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모 아니면 도 이다. 지키면 복을 받고, 지키지 못하면 벌을 받는다. 율법의 정신은 사람에게 향해 있었지만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율법 그 자체만 남았기 때문이다.
2. 오늘 본문에서도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정신은 놓치고 율법 그 자체만 말하고 있다.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16절)
3. 안식일 계명을 범하였으니 사람을 구하였더라도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논리에 따르면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는 사람을 구하기 보다는 율법을 지켜야 하는 자였다.
4.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의 안식일의 정신은 지키셨지만 안식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맹인을 안식일에 고치셨다. 복음은 항상 사람이 우선이고, 사람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어야만 한다. 예수님은 판단하는 자의 자리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리에 서 계셨다.
5. 바리새인들의 컨셉, 즉 판단하는 자의 자리는 쉽다. 어떤 상황도 관계없고, 어떤 예외도 없다. 생명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율법 그 자체일 뿐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도 율법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율법이 사람보다 귀한가?
6. 그럴 수 없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한 사람보다 귀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율법은 사람을 위한 것이지 사람이 율법을 위한 것일 수 없다. 그 우선순위를 잊어버리면 우리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율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위해 사람을 희생하게 만들게 된다.
7. 올해 여러가지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계속 사람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 사랑하고 있는가? 사랑하되 나의 몸과 나의 지체와 같이 사랑하고 있는가? 혹시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사랑하는 자의 자리에 있는가? 아님 판단하는 자의 자리에 있는가?
8. 2024년의 1월이 벌써 마무리 되어 간다. 2024년이 처음 시작될 때 가졌던 그 마음들을 잘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길 원한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자가 되기 원한다.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지 말자.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내가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는 헛된 시도일 뿐이다. 판단하려 하지 말고 사랑하려 하자. 이것이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2024년에 내가 많은 것들을 하더라도 결국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했던 일들만 남을 것이다.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의 자리에 서 있자.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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