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18:1-21 옳음을 증명하려 말하지 말고 영혼을 살리려는 말을 하자
1. 욥의 (뻔뻔한) 대답에 빌달이 화가 난 것 같다. 권선징악의 사상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과 어려움의 시간은 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분명 욥의 삶에는 죄의 결과인 고통이 가득차 있는데, 욥은 여전히 자신에 대해서 변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2. 2절은 빌달의 화가 표현된다. “너희가 어느 때에 가서 말의 끝을 맺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 욥은 아직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약간 성내면서 말하고 있다.
3. 그리고 그는 악인의 운명을 5-14절까지, 악인의 최후를 15-20절까지 말하고 있다. 5절을 보면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5-20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권선징악의 표현대로 악인은 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4. 빌달이 가지고 있는 사고에서는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죄가 없는 자는 복을 누리고, 죄가 있는 자는 벌을 받는게 당연하다. 그의 말은 확신에 차 있었고, 그의 논리는 탄탄했다.
5. 그러나 그의 옳은 말은 욥의 마음을 비수같이 찔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욥의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하기 보다는 욥의 마음을 난도질 하고 있었고, 너의 고통은 너의 죄의 결과일 뿐이니 회개하라고 말한다.
6. 어떤 말을 하느냐는 참으로 중요하다. 물론 우리는 옳은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한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조금만 지혜롭게 말을 하면 같은 옳은 말을 하더라도 상대방이 좀 더 받아들일 수 있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7. 나의 옳음을 주장하거나 증명하기 위해 하는 옳은 말은 결코 다른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그저 나의 옳음만 남을 뿐이다. 그러나 조금 돌아가더라도, 혹 나의 옳음이 증명되지 않더라도 사람을 살리는 말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8. 최근에 아내로부터 종종 듣는 말이 “오빠 말 좀 이쁘게 해"였다. 나의 말투가 문제인 것 같다. 악의가 없어도, 나쁜 의도가 없어도 말투가 뭔가 공격적이거나 혹은 아내가 듣기에 불편하게 말한 것이 틀림이 없다. 그럼 곧바로 대답한다. “나는 그런 의도가 없었어"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면서 또 오늘 묵상을 하면서 생각하게 된다. 나는 혹시 나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오히려 해야 할 것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말이 아닌가? 나의 말 끝에 나의 옳음만 남는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생명이 남아야 하고 그리스도께서 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한번 마음을 잡는다. 정신줄 잡고 말하기, 나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말하지 않기, 살리는 말을 하자.
9. 빌달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원한다. 정신줄 놓으면 사실 금방 다시 말을 통해서 나의 옳음을 증명하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의로움이 아니다. 내가 얼마나 의롭겠는가?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보다 낫겠는가?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영혼이다. 사랑이다. 살리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자.
10. 오늘도 샬롬
*에게로 클럽이 재정비가 되고 있습니다. 사역자 회의를 통해서 어떻게 왓타텅 학생들을 섬길지 나누고, 알파코스를 통해서 접촉점을 늘려가기로 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있기를, 그리고 지금 주일 예배에, 에게로 클롭 모임에 나오는 모든 학생들의 마음에 복음의 씨앗이 잘 심기워지길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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