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22:21-28
다윗은 특징 중 하나는 ‘참으로 뻔뻔함’인 것 같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내 공의’라고 말할 상황인가? 자신의 죄 때문에 온갖 난리가 다 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사람이었다. 이것이 그의 장점이고, 하나님이 그를 쓰시는 이유였다.
누가 주님 앞에 설 수 있는가? 누가 주님 앞에 자비를 말할 수 있는가? 누가 주님 앞에서 완전함과 깨끗함을 말할 수 있는가? (26-27절)
사실 아무도 할 수 없다.
그 누구도 주님 앞에 설 수 없다.
다윗은 주님께서 늘 자비와 은혜를 베푸시는 분임을 확신하였기에 그는 언제나 뻔뻔하게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다윗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 우리 중에 다윗의 꽁무니라도 쫓아갈 만한 사람이 있었던가?
그는 실수가 있었지만, 그와 같이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 또 있었는가?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
공의, 자비, 완전함, 깨끗함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분을 의지할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 어느 것도 내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내 공의가 아니라 내 자비가 아니라 내 완전함이 아니라 내 깨끗함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의요, 예수님의 자비요, 예수님의 완전함이요, 예수님의 깨끗함을 따라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을 의지하는 뻔뻔한 죄인이 되기 원한다.
주님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은혜를 잊지 않는 뻔뻔한 사람이 되자.
내가 아니라 오직 주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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