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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7:1-12 하나님을 높이는 것 같지만 결국은 자신을 높인 솔로몬
하나님의 성전은 7년, 솔로몬의 왕국은 13년
지은 방식은 여호와의 성전 건축 방식을 따라서…
솔로몬은 뭐가 하고 싶었던 것일까? 성전 건축일까? 자신의 왕국 안에 하나님을 집어 넣고 싶었던 것일까? 솔로몬의 성전건축에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나님도 굳이 칭찬하지 않으신다. 그의 성전은 지나치게 화려했고, 12절 마지막을 보면 '마치 여호와의 성전 안뜰과 주랑에 놓은 것 같더라…’ 하나님의 성전보다 더 화려하고, 여호와의 성전 안에 넣은 것들이 그의 궁 안에 있는 것 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을 높이는 것과 같은 방식 (하나님의 성전 건축)으로 자신을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백향목 궁에 살면서 하나님의 전이 휘장에 있다고 안타까워하며 성전을 짓기로 했는데 (삼하 7:2), 솔로몬은 이미 있는 다윗 왕궁을 두고, 다시 13년에 걸려서 더 화려한 자신의 왕궁을 지은 것이다.
솔로몬의 모습은 내가 드러나야 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 같은데,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 같은데 결국은 자신이 드러난다. 교묘하게, 때로는 은밀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아내와 어떤 일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다. 그러다가 아내와 서로 좀 맘이 상했다. 아내가 내 마음을 잘 이해를 못해주는 것 같아서였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솔로몬과 비슷한 마음이 내 안에 은밀하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에 대해서 내가 깊이 생각하는 것 같고, 위해주는 것 같고, 걱정하는 것 같이 말하지만 혹시 이 것이 내 의를, 내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100% 악한 마음은 분명히 아니지만 내 안에 이러한 마음이 없는 완전한 순수한 동기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말하던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 일에 대해서 아내에게 사과를 하고 말씀을 대하면서 알게되었다). 나는 좀 더 알고, 나는 좀 더 경험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다.
솔로몬과 같이 하나님을 위하는 척 성전을 짓고, 그 이후에 자신의 성전은 두배의 시간과 두배 이상의 크기로 화려하게 지어버리는 것 처럼 말이다. 결국 내가 드러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일에 대해서 회개하게 되었다. 말씀에 나를 비춰보아야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아는 것 같다. 좀 마음이 어렵다. 내 마음의 동기가 순수하지 않다는게… 하지만 뭐 사실 부끄러운 일이 이것 뿐이겠는가? 내가 드러나는 방식이 아니라 나는 없어지고, 예수님께서만 드러나시는 세례요한의 삶의 태도가 내 안에 있어야겠다. 솔로몬의 실패를 거울 삼고, 오늘의 실패를 거울 삼아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내가, 그리고 오늘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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