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18. 12. 10.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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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4:21-31 복음으로 가득한 양육

어제까지는 북이스라엘 여로보암과 그의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 했었다면 오늘 본문은 남유다의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으로 돌아온다. 그는 늙은 신하들의 지혜를 멀리하고 야망을 가진 젊은 친구들의 말을 들음으로써 이스라엘을 두 동강 냈다. 그런데 그러한 그를 오늘 본문에서는 매우 특이하고, 또 슬프게 묘사하고 있다. 22절에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는 죄에 관해서 뛰어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렇게 불러주셨다는 것에 더욱 슬픈 마음이 든다. 

그런데 그 씨앗은 바로 그의 아버지 솔로몬이 뿌렸다. 바로 그의 어머니를 오늘 본문에서만 두 번 소개하는데,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사람이더라 (21절, 31절)’ 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암몬 자손이었다. 솔로몬이 다른 나라의 공주들과 혼인을 통해 자신의 나라의 안정을 도모했는데, 바로 암몬 사람의 아들이 여로보암이었다. 이스라엘에 대해 들은 바로는 모계사회로, 유대인이라고 함은 아빠가 어떤 사람인가는 중요하지 않고, 엄마가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취급을 해줄 정도로 엄마의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민족이었다. 그런데 세상적으로 안정을 도모하느라 하나님의 말씀을 경히 여기니, 죄에 관해서 뛰어난 아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율법과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는 아들이 나온 것이다. 

말씀과, 하나님을 삶과 분리하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어머니의 교육은 삶과 신앙의 일치이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양육자이기 때문이다. 말씀 따로, 삶 따로의 삶으로 자녀를 양육하게 된다면 우리는 죄에 탁월한 자녀를 양육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안정, 세상의 성공을 도모하려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경히 여기고, 하나님과 삶을 분리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집에서는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말하지만 세상 속에서는 하나님을 부끄러워 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나의 삶과 나의 신앙은 일치되어 가고 있는가? 나는 우리 형제들에게 그러한 삶으로 가르치고 있는가? 우리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가? 삶을 돌아보면 부끄러운 이야기이다. 형제들이, 아이들이 악한 일에 뛰어난 자가 되지 않기를 원한다. 그들의 삶은 사실 나의 책임이다. 그렇다면 먼저 내 삶이 복음으로 하나된 삶을 살아야만 한다. 내 삶을 인도하는 것이 말씀이고 복음이어야지 암몬 사람이 되면 절대로 안되는 것이다. 나는 유대인 어머니와 같은가? 아니면 암몬 자손의 어머니와 같은가? 복음으로 가득한 양육자가 되기 원한다. 복음으로 가득한 부모가 되기 원한다. 복음으로 가득한 선교사가 되기 원한다. 두려워 함으로 내 삶을 매일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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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