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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4:1-20 누구와 함께 무엇을 위해 사는가?
여로보암은 자신에게 직접 주신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였지만 자신의 아들 아비야가 아프자 다시 하나님이 생각이 난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지 못하고 자신이 왕이 될 것을 예언했던 선지자에게 물으러 간다. 그것도 자신의 아내를 몰래 변장시켜서 가도록 한다. 찌질한 남편의 모습이고, 찌질한 왕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그런 여로보암에게 주실 말씀을 먼저 예비하신다. 아내가 성읍으로 돌아가면 아이가 죽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아들만 묘실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아들은 정말 죽게 되었다. 그는 왕이 되지도 못했고, 그는 그렇게 짧게 살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었고, 여로보암 왕은 그 이후로도 20년을 더 왕으로 살다가 죽게 되었다 (20절).
하나님께서 내리신 아들 아비야와 여로보암 왕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다. 한 사람은 짧은 인생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위해 선한 뜻을 품었다고 하셨지만 (13절), 여로보암 왕은 그의 죄 때문에 그의 집안을 쓸어버리고 죽으면 그 시체를 개와 새가 먹을 것이라 평가하고 계신다 (10, 11절). 얼마나 오래 사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사느냐이다.
캄보디아에 와서 정말 열정을 다해 비즈니스 미션을 하고 있는 형님 부부와 교제하며 느낀 마음과 같다. 충분히 자신을 위해 편하게 잘 살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신 곳에서 영혼들을 위해 손해보며 살 수 있는 삶이 가장 귀하고 풍요로운 삶임을 더 깨닫는다. 나는 지금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내 삶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실까?
혹시 여로보암처럼 나를 위해 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복음을 이야기 하면서도 그 복음으로 살아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얼마나 깊이있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평가하시는 기준임을 잊지말자. 하나님은 성취만을 평가하지 않으신다. 아비야가 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아비야가 가진 그 선한 뜻을 보셨고, 그것을 평가하셨다. 마치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을 의로 간주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오늘도 내가 이 곳에(방콕에) 있는 이유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혼들을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며 이 곳에서 살아가는 것임을 잊지말자. 하나님이 부르신 이 곳이 우리가 발을 딛고 소망하며 살아갈 바로 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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