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19. 3. 2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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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7:24-27 식탁 아래 그 자리를 잊지 말자. 

수로보니게 여인… 
그녀는 성경에서 참으로 독특한 존재이다. 이방인들이 많이 등장하는 성경이지만, 내 기억상으로는 어느 이방인도 자신이 '개 같은 존재'임을 이야기하거나, 반대로많은 이방인들의 믿음을 칭찬하셨던 예수님도 이 여인에게 처럼 강한 어조로 구원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음을 그리고 이방인들은 그 부스러기를 먹는 존재들임을 말씀하신 사건은 없는 것 같다. 한 마디로 무언가 특별한 그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이 쏘아 부칠 때에 그녀는 그 쏘아 부치는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딸을 고칠 수 있는 분이 예수님 밖에 없음을 확신했기 때문에 그 말에 흔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은혜를 구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27절)

주님께서 쏘아 부치는 말이 분명 맞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 여인은 자녀들이 아니라도, 설령 개일지라도 그 주인의 식탁에서 나오는 은혜를 누릴 수 있음을 고백한다.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나는 내가 늘 자녀의 자리에 있기를 원했다. 물론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다. 
하지만 원래 내 자리는 저 여인과 같이, 식탁 아래의 개와 같은 이방인의 자리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양자로 불러 주신 것이다. 
수로보니게 여인을 불러주신 것 처럼… 그녀의 믿음을 보신 것 처럼… 자격없는 나를 자녀로 불러 주셨다. 
이해할 수 없는 은혜이다. 

복음의 핵심은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내가 자녀라는 것이, 내가 상속자라는 것이 머리 속에 들어오면서 내가 원래 누구였는지를 점점 잊게 된다.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나의 어떠한 행위들이나 공로들이 들어오게 된다. 알고보면 별다를게 없는데도… 다른 척 한다. 
교만이다. 

내가 은혜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음을 결코 잊으면 안된다. 은혜를 잊어버리니 복음이 더 이상 감사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다. 내가 자녀인 것이 당연한데 무엇이 감사하겠는가? 

복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내가 결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없는 죄인인데,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복음을 실천한다는 것은 나와 같은 죄인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것 같이 값 없는 사랑으로 그들을 온전하게 사랑하는 것일 것이다.

오늘 하루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감사하기 원한다. 
우리 가정과 태국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 잊지 않고 기도해주시는 분들
어려운 환경 중에도 재정으로 후원해주시는 분들과 교회들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특별히 투병중에 계신 우리 아빠, 그리고 많은 사랑하는 동역자들
그리고 내가 값 없이 받은 구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소개하는 복음 조차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나머지를 다 담당하신 것이 아닌가?
내가 누구인지(얼마나 큰 죄인인지.. 구원 받을 수 없는 존재인지를) 알고,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를 아는 그런 하루가 되고 싶다.
그리고 어떤 것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진심으로 감사하며 더 사랑하기 원한다. 

내가 원래 있어야 했던 식탁 아래 그 자리를 잊지 않는 자가 되기 원한다.
은혜가 은혜로, 사랑이 사랑으로 느껴질 수 있는 나의 자리를 잊지 않으며, 그 은혜와 그 사랑에 감격해 오늘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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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