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2:1-12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지혜와 (내게 주어진 구역을 아는)은혜
농부들은 세를 내고 이 포도원에서 지냈다.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타리를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만든 사람이 주인이다 (1절). 그런데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잊기를 원한 것인지… 그들은 주인이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기 위해 보낸 종들을 다 죽였다 (3-5절). 아마도 주인이 1절에서 타국에 갔다고 하니 그 동안 자신들이 주인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면, 주인이 지금 같은 공간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면 사람이 이렇게 뻔뻔해진다. 주인이 아니면서 주인행세를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구, 그 위에 우주, 내가 먹고 있는 물, 숨쉬는 공기, 그리고 심지어 내 몸까지 내가 만든 것이 하나도 없다. 내가 안 만들었다면 만드신 그 누구인가가 있다는 것이고, 그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내가 만들지 않았으면서도, 내가 이 모든 것들에 주인행세를 하려는 것은 이 농부들과 비슷한 행동이다.
결국 주인행세를 하는 농부들은 그 주인이 왔을 때 진멸당하고, 포도원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게 된다 (9절). 분명히 이것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스라엘을 향한 경고이다. 하지만 또한 마찬가지로 창조주를 무시하고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되려는 자들에게 주시는 경고임에 분명하다. 오늘 내 삶에, 내 하루에, 내 일상의 주인은 누구이신가? 주인되신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농부와 같은 나인가?
주인 행세를 하는 그 마지막은 진멸이다 (9절). 내가 주인이 아닐 때에는 결코 주인이 되려고 해서는 안된다. 내가 주인이 아님을 내 주변의 모든 자연과 이 땅과 하늘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이 지혜가 되는 것이다. 내게 줄로 재어진 구역이 어디인지를 알고 그 구역 안에 머무르는 것이 은혜이다. 오늘도 그 지혜와 그 은혜로 하루를 살아내기 원한다. 그 지혜와 은혜가 있었던 이가 바로 세례요한이었다. 그의 고백과 같이 주인이신 하나님은 흥하시고, 농부와 같은 나는 쇠하는 그런 하루가 되기를 원한다.
특별히 내가 살고 있는 (내게 주어진) 구역을 옮기려고 집을 보고 있는 중이다. 이사는 언제나 쉽지 않다. 이사를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은 내가 나그네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사할 때에도 '이렇게 집이 많은데 왜 내가 살 집은 없지?’라는 생각이 많이 했었다. 지금 태국에서는 더 많이 그런 기분을 느낀다. 우리 가정의 상황과 재정에 맞는 집을 찾는 일이 정말 쉽지가 않다. 그래도 분명히 우리가 머물 곳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영광교회 주변에 빈 집이 별로 없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분의 선하신 계획대로 인도하실 줄을 믿는다. 왜냐하면 그 분께서 나를 이 곳으로 이끌어 오셨고, 그 분이 나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우리를 인도해주시기를…
그 은혜가 정해주시는 구역 안으로 들어가길 원한다.
저희 가정의 상황에 맞는 적절한 집을 만날 수 있게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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