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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1:1-19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하기

예수님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기수가 타기 쉽게 잘 길들여져 있는 백마가 아니라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즉 보잘 것 없고, 어리고, 훈련되지 않아 그다지 가치가 없는 나귀를 타셨다 (2-7절). 세상을 구할 메시아의 모습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오셨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가 그러한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린아이가 큰 자이고, 섬김을 받아야 하는 스승이 제자들을 섬겨 발을 씻기는 곳이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거꾸로의 왕국(Upside-down Kingdom) 이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를 타신 일 처럼 세상을 구하는 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은 이와 같이 사람들의 생각과 눈에 어색하고 이상하게 보이는 일 일지도 모른다. 높은 곳으로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모습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오려는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왜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를 풀어 오라고 하였고 (2절), 또 누군가 물었을 때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를 알려주셨을 때 그들은 순종했다 (3-4절). 제자들이 얼마전까지 어떤 태도였는지를 안다면 이 사건은 당연하 일은 아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져야 함을 이야기 하셨을 때 누가 더 높으냐를 두고 싸웠던 자들이 아닌가? 여전히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순종했고, 그들의 순종을 통해서 예수님은 구약 말씀을 성취하셨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이해의 여부가 아니라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였는가? 아니면 순종하지 않았는가? 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하나님의 일이 우리에게 속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8장의 대사명을 보면 '하늘과 땅의 권세를 내게(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으니' 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순종하는 일이다. 이 순종이라는 것이 때로는 나귀를 풀어 오는 것과 같이 쉽고 하찮아 보이는 일 일수도 있다. 때로는 우리의 한계와 생각을 넘어선 큰 일 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순종하는 것이다.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순종은 어렵다. 자꾸만 주님께 물어보게 된다. 물어보는 것이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순종을 내 이해의 한계로 좁혀서 내가 이해되는 것만 순종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은 순종하지 않는 그런 자가 되지 않기를 원한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기 때문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원한다. 그것이 내가 왕이라고 생각하는 예수께서 작은 나귀새끼를 불러오는 것과 같은 하찮아 보이는 일, 혹은 뭔가 어울리지 않고, 이상한 일이라도 할지라도 순종하기 원한다. 

오늘 내가 순종해야만 하는 나귀새끼를 불러오는 것 같은 일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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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