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1:20-33 권위의식이 아니라 소명의식으로 사는 사람이 되자
오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묻는다. 한 마디로 우리는 권위가 있는 대세사장과 서기관들인데, 너는 쥐뿔도 없는 시골 나사렛 출신의 촌놈 아니냐? 니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와 같은 질문이다. 아마도 목사나 선교사로 따지면 '너 어디서 안수 받았어? 너 어느 파송교회 출신이야?' 정도의 질문일 것이다. 예수님을 한마디로 출신도 잘 모르고, 권위도 없어 보여 믿을 수 없는데 기적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 이것에 대해서 그들은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의 말이 어느정도는 맞다. 권위는 주어지는 것이다. 권위는 내가 가지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 스스로에게 권위를 부여할 수도 없다. 권위는 위로부터 오는 것이다. 요한의 세례의 권위가 하늘로 부터 오는 것과 같이 예수님의 권위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우리는 그 권위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도 예수님은 그 권위에 대해서 따로 말씀하시지 않았고,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으셨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는 왜 권위가 필요했을까?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과 자신들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 권위가 필요했던 것이다. 즉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권위라는 것을 이용한 것이고, 그 인간의 권위라는 것은 오히려 하늘로부터 내려온 권위들을 박살내고 있다. 세례요한이 그렇게 죽었고, 이제 예수님에게까지 왔다. 예수님을 그들의 권위로 찍어누를 셈이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주신 사명 위에는 별로 권위가 필요없다.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사람들이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의 것, 그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서, 내가 다른 사람보다 높다는 그 어떠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인간이 세운,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권위가 필요하다. 모든 권위가 필요없고, 권위는 나쁜 것이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위로부터 오는 권위가 있는가?
그게 아니라 내 지위, 나의 우월함을 표현하기 위해 사람들이 세워가는 권위에 나를 기대는가?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권위의식이 아니라 소명의식으로 사는 사람이 되기 원한다.
대접받고 싶고, 상석에 앉고 싶고,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기를 원하는 그런 권위가 나를 이끌어 가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 나를 이끌어가는 그런 삶을 살아내고 싶다. 내 스스로의 권위로 나를 증명하려고 하지 말고, 오직 말씀으로 나의 소명으로 나의 삶을 살아내고 싶다.
아이들에게, 아내에게…
그리고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
권위가 아니라 사랑으로, 소명으로 이들을 대하고 싶다.
정말 나는 내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 커서 사랑과 소명이 나의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들다.
하지만 실패해도, 잘 안되어도 오늘 다시 말씀을 붙들고 예수와 같이 소명의식으로 살아내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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