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19. 9. 3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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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4:10-23 내 삶의 주인이 되기를 내려놓을 때 찾아오는 평안

1. 말씀을 묵상하기 위함은 순종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전제를 두고 시작하는데도 말씀이 다가오면 아플 때가 있다. 그 말씀 때문에 짜증이 솓구칠 때가 있다. 바로 오늘이 그러하다. 첫 번째 말씀을 읽는 순간에 확 짜증이 올라왔다. 태국에서 중고로 산 차에 문제가 생겨서 일반 수리점에 갔더니 여기서 안된다고 정식 수리점에 가라고 하였고, 정식 수리점에 가서 맡기니 일단 4시에 어디가 문제인지 알려주겠다고 하며 센서 문제일 경우 비용이 많이 들것이라고 말을 한 것이다. 

2.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집으로 돌아와 말씀을 피니 바로 이 말씀이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4:11-12” 

3. 너무 잘 아는 말씀이라 더 짜증이 났다. '주님.. 차가 고장이 안 나게 하셨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굳이 차는 고장이 나서 맡기고 나니 저에게 자족하라는 말씀을 주는 것이 도대체 왜 인가요?' 라는 질문과 불만이 터져나왔다. 여전히 나는 19절에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내 고백이 아니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이 나의 인생에 그토록 자주 (선교사의 삶은 사실 매달 채우심이 없으면 살 수 없다) 필요한 것을 아시고 채우셨음에도 이번의 나의 반응은 분냄이었다. 

4. 여전히 그 분을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아버지라고 믿는 믿음보다 내가 바라는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 즉,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내가 원하는 일이 안되는 것에 대한 분노가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5. 사도 바울의 인생을 보라. 그가 나 처럼 매달 누군가로부터 후원을 받으며, 그 후원이 국제송금이 되어 오는 그런 시스템 안에 살고 있었던가? 그렇지 않다. 그 시절은 편지만 보내도 도착에만 몇 달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시대였다. 그러한 시대의 바울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 풍성한대로 채우실 것을 고백하고 있다. 

6.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상황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어떤 아버지로 믿고 신뢰하고 있는가의 여부이다. 하나님 자리에 내가 앉아서 결코 누릴 수 없는 것은 바로 ‘자족을 배우는 일’이다. 이 자족을 배워야 13절 말씀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7. 13절 말씀에서 더 중요한 것은 후반부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이 아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란 고백이다. 그 ‘안에서’만 우리는 할 수 있다. 반대로 이야기 하면 하나님 밖에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8. 하나님이 내 삶을 이끌어 가시는게 가장 BEST 임을 고백하면서도 동시에 분냄을 낼 수 있는 나는 도대체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오늘도 나의 믿음의 연약함을 깨닫는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 속에서 누가 참된 하나님이신지에 대해서도 배운다. 깨달음과 배움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성숙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기 원한다. 

9. 큐티를 하고 나니 마음이 가볍다. 이따가 비용을 들었을 때에도 이 마음이 유지될 수 있으면 좋겠다. 평안이 있기를 원한다. 어차피 하나님이 하실 일이시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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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