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0. 1. 2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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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7:36-50 죄인됨의 은혜

1. 바리새인은 여인을 보며 죄인임을 알았다. 그의 태도는 그와 여인을 구분하는 것이었다. 그 구분은 여인은 죄인으로 자신은 의인으로 여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2. 예수님도 여인을 보며 죄인임을 알았다. 하지만 예수님는 그녀를 예수님과 구분하지 않으셨다. 거룩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죄인과 함께 있기로 하셨다.

3. 예수님의 관심은 ‘누가 의인이냐?’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관점에서는 의인과 죄인을 이 땅에서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0, 또한 예수님의 증언처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4. 이 땅위에 사는 그 누구도 선할 수 없고, 의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관심은 죄인과 의인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셨다. 모두를 용서하셨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에, 그 사랑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죄가 더 많았다고 고백하는 사람인 것이다. 사도 바울이 왜 그렇게 죽을 고생을 여러번 하면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가? 

6. 그것은 그의 정체성의 고백이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 1:15 후반부' 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죄가 가장 크다고 생각했기에 오늘 탕감받은 자 처럼 가장 큰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7.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자랑해야 한다. 우리의 죄인됨을 자랑해야 하고, 우리의 악함을 수시로 묵상해야 한다. 그래야 사랑이 임한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아는 것이 내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를 알게 한다. 

8. 그러한 죄인인 우리를 예수님이 사랑하셨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다. 내가 죄인이기에 나는 주님이 필요하다. 나와 다른 사람을 죄인과 의인으로 가르는 것이 아니라 그도 나도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함을 기억해야 한다. 

9. 나의 선교의 동기와 이유가 바로 우리같은 죄인을 구하러 오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도 죄인이다. 나도 죽었어야 했다. 그런데 살았다. 그런데 용서 받았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10. 이러한 ‘죄인됨의 은혜'가 오늘 하루 삶에 가득하길..

11.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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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