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5:1-11 그리스도를 본받아.. 관계 속에서 죽자
1. ‘화목’이라는 단어는 주로 가정에 쓰이는 단어라고 스스로는 인지하고 있었다. ‘화목한 가정’과 같은 형태로 쓰인다. 온 가족이 화기애애하고, 서로 사랑해서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 갈 때 보통 ‘화목한 가정’이라는 표현을 쓴다.
2. ‘원수’라는 단어도 여러 곳에서 쓰이지만 가정에서도 자주 쓰인다. ‘저 웬수 같은 XXX’ 드라마에서도 자주 보이고, 실제로도 가정에서 종종(?) 쓰인다. 그런데 이 두 단어가 오늘 본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3. 그래서 더욱 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자녀로 포지셔닝 되는 것 처럼 느껴진다. 가족과 같이 아주 가까운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 자녀의 관계로 느껴진다.
4.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가 ‘원수’가 되었다.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의 반역으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진 이 관계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10절). 다시 아버지와 아들, 따스한 가정의 모습을 회복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이 아들은 결국에는 하나이다. 아버지가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이 땅으로 오셔서 죽으신 것이다.
5. 그것도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는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6절). 우리가 아무런 자격도 조건도 안되는데 아버지께서 가정의 화목을 위해 죽으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사랑의 확증이었다 (8절).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게 된다 (11절).
6.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 모두를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여셨고, 우리는 그 화목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게 된다. 죽어야 사는 것이고, 죽어야 얻는 것이다. 죽어야 화목하게 되고, 죽어야 사랑하게 된다.
7. 적용이 좀 쌩뚱맞을 수 있는데, 결국 집에서 아버지는 죽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가족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 처럼 나의 가정을 위해서도 아버지(나)는 죽어져야 한다. 화목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어주신 것 처럼 나도 죽어져야 한다.
8. 그런데 관계 속에서 안 죽어지고 싶다. 그것이 가족과의 관계이고, 자녀와 아내와의 관계 속에서도 안 죽어지고 싶은 것이 ‘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본을 우리에게 보이셨다. 하나님과 ‘원수'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 죽으셨다. 가족은 ‘원수’도 아니지 않은가? 이들을 위해 죽어지지 않으면서 어찌 다른 사람들, 태국의 영혼들을 위해서 죽어질 수 있겠는가?
9. 예수님의 본을 따라가지 않으면 누구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수 없다. 결국은 또 다시 원점이다. 'Not I, but Christ’ 내가 죽어져야 하고 그리스도께서 사셔야 한다. 가정의 관계 속에서도, 사역의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자.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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