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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13-25 예수님과의 거리두기는 더 위험하다

1. 실제로 성전 안에 이득을 취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장사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용납하시지 않으셨다. 하지만 분노로 그 판을 뒤집지 않으시고,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으로 그것을 뒤집으셨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17절)

2. 어떠한 일에 대한 나의 분노는 그저 내 안의 개인적인 분노인가? 그 일에 대한 나의 감정인가? 아니면 예수님과 같은 거룩한 분노인가? 여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열심이 있으셨고, 표적을 요구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표적으로 제시하셨다. 

3. 19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이 말씀은 그 분의 몸이 우리를 위해 헐어지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하지만 오늘 이 말씀은 나에게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4.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헐어 우리의 몸이, 우리 자신이 성전이 되게 하셨는데, 여전히 우리는 우리의 성전에서 (우리 몸에서) 다른 것들을 섬기고 있다. 물질, 성공, 나 자신, 자녀, 사역 등등등.. 하나님께서 계셔야 할 성전에 다른 것들이 가득 차 있다. 

5.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 안에 우상들을 헐어라 그러면 내가 네 안에 다시 성전을 일으키리라’ 라는 말로 들린다. 물론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가르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말씀을 묵상하며 오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는다. 

6.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우상들이 있는가? 하나님의 성전이 내 몸 안에, 내 생각 안에, 내 마음 안에 얼마나 많은 분노와 시기, 질투, 그리고 탐심과 음욕이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잘 포장하여 거룩해 보이는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예수님은 그것들을 헐어 버리라고 오늘 말씀을 통해 말씀하신다. 

7. 헐어 버리면 망할 것 같은데, 죽을 것 같은데 그 분이 다시 일으키시겠다고 말한다. 겸손해 보이려고 하지 않고 겸손해야 한다. 회개하는 척 하지 말고 회개해야 한다. 거룩해 보이려고 하지 말고 거룩해져야 한다. 물론 내 힘으로 할 수 없다. 내 능력으로 나의 ‘척’하는 모습을 어쩔 수 없다. 

8. 결국 다시 일으키실 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수록, 내 안에 우상들이 더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수록 내 안의 더러움들이 더 미워질 것이다. 예수님과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나를 더 ‘척’하게 만들어간다.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 

9. 오늘도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주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간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더 나아기 원합니다” 아멘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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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