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3:22-36 내가 아니다 그리스도이시다.
1. 너무나도 유명한 세례요한의 고백이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또한 고백처럼 살아내기는 너무나도 힘든 말씀이다.
2. 세례요한이 자신을 쇠하여야 하는 사람임을 깨달은 것은 그가 신랑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29절). 또한 그가 위로부터 온 이가 아님을 알았고, 땅에서 난 이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31절).
3. 이처럼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 모두는 신랑이 아니고 우리 모두는 위로부터 온 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인식이 나로 하여금 겸손하게 만든다.
4. 교회를 개척하여 2달이 지났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는 그 분의 몸된 지체로 움직이고 있다. 때로는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나' 인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면서도 그렇게 의도적으로 혹은 의도하지 않고서 내가 주인이 되려고 하는 때가 있다.
5. 세례요한과 같은 자기인식의 모습이 있을 때,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할 수 있다.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고 고백할 수 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속에 있을 때, 비로서 나는 안되고, 그 분만이 되신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다.
6.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나를 나로 알 때 새로운 눈이 열린다. 나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는가? 고백하면서도 왜 자꾸 내 생각이 우선이고, 내가 주인이 되려고 하고 있는가? 요즈음 계속 듣고 있는 히즈윌의 '믿음이 없이는' 이란 찬양이 생각난다.
7. 이 찬양의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나그네로 왔는데, 왜 주저앉게 되었나 나는 청지기인데 언제부터 내 삶에 주인이 되어 버렸나” 세례요한은 확실히 알았다. 자신은 나그네였고, 자신은 청지기였고, 자신은 그저 그 분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자리를 넘보지 않았고, 주인이 되려 하지 않았고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있을 수 있었다.
8. 내가 아니다. 그리스도이시다 (Not I, but Christ). 그 분만이 주인이 되셔야 하고, 그 분만이 왕이 되셔야 한다. 내가 왕이 되고, 내가 주인이 되려고 하는 모든 시도들을 내려놓기 원한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뭘 그렇게 하겠다고.. 주님이 일하시도록 주님이 주인되시도록 오늘도 그 분께 더 맡겨드린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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