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9:24-41 진리와 하나님에 대한 겸손함
1. 율법에 열심이 있었던 바리새인들은 맹인이 눈을 뜬 사건에 대해서 심히 당황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시각에서 자신들과 대척점에 서 계셨던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 내가 하나님 편에 있고, 저 사람은 나와 대척점에 서 있으니 저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의 편이 아니라 사단의 편이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하나님을 작게 보았고, 그들 자신을 너무나도 의롭게 보았다.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틀렸다.
3. 하지만 맹인은 그들과 다른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눈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이 떠졌기 때문이다. 25절에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4. 그는 또 다시 바리새인들에게 말한다. 32-33절에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증거가 나타날 수 밖에 없다.
5. 바리새인들의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편에 있다는…) 하나님의 역사와 증거를 보고도 예수님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예수님도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서 정확하게 지적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6. 차라리 몰랐다면, 차라리 겸손하였다면 괜찮을텐데.. 스스로 안다고 하고, 본다고 하니 그것이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에 비춰본 나의 삶은 어떠한가? 나는 본다고 하는가? 안다고 하는가?
7. 선교사로 살아가면서 태국 사람들이 나에게 신앙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내가 대답할 때가 많이 있다. 그리고 설교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도 많이 있다. 그 때의 나의 태도가 어떠했는가? 겸손하고 내가 다 알지 못한다는 태도로 그들을 대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8. 결국 의로우신 분은 하나님 한 분 이시요, 모든 것에서 풍요롭고 부요하신 분도 하나님 한 분이시다.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신비와 놀라우신 능력, 그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아주 조금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내가 어찌 선생이라고 하며 그들을 가르치겠는가?
9. 결국은 진리에 대한 겸손함, 하나님에 대한 겸손함이 없이는 교만하여 질 수 밖에 없다. 교만하여 하나님의 증거를 보고도 배척할 수 밖에 없다.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서야만 겸손할 수 있다. 내 얄팍한 지식과 생각을 자랑하지 말고 항상 겸손함으로 모든 사람들 대하자.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삶이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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