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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3:12-30 죽이는 자와 살리는 자의 차이

1. 오늘 본문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나온다. 죽이려는 자와 살리려는 자. 죽이려는 자는 유대인들이고, 살리려는 자는 바울의 생질과 천부장이었다. 

2. 먼저 유대인 40명은 바울을 죽이려고 한다. 그들은 심지어 이렇게 맹세한다.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2절)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의 전통과 율법을 망친다고 생각하는 바울을 죽이기로 결정했다. 

3. 이들을 보며 근본주의 이슬람과 다른게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고, 소란이 일어나면 그가 죽는게 당연한 것인가?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선민사상이 보인다. 그들에게는 지금 사랑은 없고 판단만 남았다. 

4. 하지만 살리려는 사람들도 있다. 바울의 생질이 이 소식을 듣고, 천부장에게 가서 바울을 구하고자 한다. 바울의 생질은 바울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을 것이고, 천부장은 그저 상황을 듣고 합리적인 판단을 한 사람이었다. 

5. 천부장이 보기에도 바울이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는 이렇게 편지를 썼다.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29절) 물론 바울이 로마 사람이었기 때문이었겠지만 합당한 이유가 없는 한 로마 시민의 자유는 지켜져야만 했다. 

6. 나의 마음은 혹시 유대인들과 같지 않은가? 나의 생각과 관점과 다르면 그것을 인정하고 그대로 봐주기 보다는 ‘왜 저렇게 생각하지?’ 라며 그를 다르게 색안경을 끼고 보지는 않는가? 실제로 죽이지는 않지만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마음으로 살인하는 자라는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7. 죽이는 자가 아니라 살리는 자로 살아야 한다. 살리기 위해서는 결국 바울의 생질과 같아야 한다. 가족으로 사랑한 것이다. 내 몸과 같이 사랑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바울이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었으랴? 결국은 사랑이다. 

8. 판단은 사람을 죽이게 되지만 오직 사랑만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는 얼마나 흠 많고, 판단받을 만한 존재였는가?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판단치 않으시고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셔서 죽으셨을 때 사도들과 같이 바울과 같이 사람을 살리는 자들이 나오지 않았는가? 

9. 사랑이다. 사랑만이 사람을 살린다. 오늘도 그 예수의 사랑이 나를 살리고, 나도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하루가 되기를 원한다. 사랑이 모든 것이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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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