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 5:1-12 욕망이 아니라 믿음으로
1. 성경은 어려운데 쉽고, 쉬운데 어려운 것 같다. 아무리 읽어도 그 의미를 모르는 것 같은 때가 있는 것 같은데, 또 어떤 때는 너무 쉬워서 이게 맞나 싶은데 그게 진리일 때도 있다.
2. 오늘 본문에서도 쉽게 쉽게 설명한다. 1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라고 말씀한다. 믿는 자의 주된 사명은 사랑하는 것이다.
3. 그리고 4절을 보면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라고 말씀한다. 여기까지 읽으면 우리가 어떻게 이길까? 무엇을 이길까? 생각할 수 있는데, 4절은 조금 더 설명하고 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4. 우리가 세상에 대해 승리함은 세상적인 기준(지배하고 정복하고 더 많이 가지고 누리게 되는 것)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오는 죄와 죽음에서의 승리이다. 더 이상 죄와 죽음이 우리에게 왕 노릇 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5.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게 하고,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 믿음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1절에서는 이 믿음에 대해 설명하기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 이라고 설명한다. 즉 예수께서 구약 성경 전체가 예언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창 3장에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이에 대해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아시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모세가 신명기에서 ‘나 같은 선지자’ 라고 했던 바로 그 분임을 믿는 것이다.
6.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면 나머지는 모든 것이 헛것이다. 한때(지금도) 조엘 오스틴이란 목사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는 ‘긍정의 힘'이란 유명한 베스트셀러를 쓴 번영복음을 믿는 사람이었다. 그의 논리는 단순하다. 우리는 왕의 자녀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누려야만 하고, 우리가 누릴 것을 믿으면 믿는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의 교회는 부는 갈망하는 사람들로 인해 부흥했고, 조엘 오스틴 목사는 더 부자가 되었다.
7. 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이기 이전에 그의 욕심과 욕망을 이루어주는 램프의 지니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단 한 번도 우리가 믿는대로(욕망하는대로) 이루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분임을 예언하고 있다.
8. 십자가 없는 구원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내가 바라는 모습대로 살아가기만을 원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욕망이다. 요한 사도는 오늘 계속해서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믿음보다 우리의 욕망을 예쁘게 포장한 믿음에 더 혹하게 된다. 십자가 보다는 영광을 기대하게 되고, 대접하고 섬기기 보다는 대접받고 섬김을 받기를 기대하게 된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
9. 나의 믿음이 오직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에 있다면 욕망이 아니라 영광이 아니라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엉덩이가 가벼운 영성' ‘섬김의 영성' ‘사랑의 영성'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아내가 없는 이 시간을 아이들을 위해 조금 더 시간을 낼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 성도들을 위해 조금 더 시간을 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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