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2:21-32 과하게 베풀어주신 은혜
1. 오늘 본문은 유명한 본문이다. 형을 달래려고 온갖 수를 다 쓰던 야곱이 하나님이 보낸 자와 밤새 씨름하였고, 그의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뀌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건이다.
2. 본문을 읽어가면서 의문이 든 부분은 24절이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이 본문을 생각하면 이전에 들었던 설교의 내용들, 야곱이 포기하지 않고 기도한 것이나 이름이 바뀐 사건 등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야곱이 먼저 기도하지도 않았고,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
3. 그저 ‘어떤 사람'이 홀로 남은 야곱에게 나타났을 뿐이다. 이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야곱이 먼저 구하거나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권적으로 먼저 나타나 주셨고, 씨름을 해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야곱의 삶으로 훅 들어온 것이다.
4. 우리의 믿음, 우리의 구원 모두 동일하다. 내가 믿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혹은 내가 결심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야곱과 같이 그저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그 어느 찰나에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먼저 찾아와 개입해 주신 것이다.
5. 그러기에 우리의 삶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일 수 밖에 없다. 내가 무엇인가 기여했다고 생각하면 그때가 바로 망하는 길이다. 야곱도 그의 인생에서 무엇을 했는가? 그는 솔직히 은혜를 과하게 누린 사람이라고 생각될 만큼 문제투성이의 삶을 살지 않았는가?
6.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뀐 것도 야곱이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씨름해주시고, 져 주시고, 이름을 바꿔 축복해주신 것이다.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이유이다.
7. 지금 나의 삶을 돌이켜 봐도 마찬가지이다. 사역을 돌아봐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인가 열심히 살아가고, 애쓰며 살아가지만 막상 내가 무엇을 했는지 돌아볼 때, 내가 한 것이 별로 없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서 가장 나쁜 자세는 바로 ‘교만'인 것 같다. 내가 한 게 없는데 내가 한 것처럼 생각해야 생기는 마음이 교만이기 때문이다.
8. 하나님께서 하셨고, 내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계속 기억하고 내 마음에 새기길 원한다. 나의 인생과 야곱의 인생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기억하자. 야곱만 은혜를 과하게 누린 사람이 아니라 나 또한 은혜를 충분히 과하게, 흘러 넘치도록 누린 사람임을 잊지 말자. 혹시 내 기준에 아직 은혜가 더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면 오래참고, 기다리고, 사랑하자. 나도 그렇게 기다려주고 참아주고 사랑해준 사람들로 인해 지금 오늘까지 오지 않았는가? 야곱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내 삶에도 동일했음을 기억하고, 나도 동일하게 가족들에게 수쿰빛 언약교회 교인들에게 기다리고, 사랑하며 베푸는 자가 되자.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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