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13-20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더 나은 의, 사랑
1. 소금과 등불은 그 고유의 역할이 있다. 어떤 것도 대신 할 수 없는 유니크함이 특징이다. 하지만 그 유니크함을 잃어버린다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게 되는 것이 소금과 등불이다.
2. 13절은 이것을 잘 말하고 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3. 이 이야기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 우리 기독교인들 에게도 유니크한 고유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다른 종교인들이 대신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일은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을 보게, 알게,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
4.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6절). 세례 요한의 회개의 메시지에서도 우리의 변화된 삶을 강조하였다면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변화된 삶을 통해 세상이 하나님 아버지를 보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5. 예수님은 한 발짝 더 나아가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20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 시대에서 가장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외식하는 모습으로 성경에서 자주 묘사되지만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열심은 대단했다.
6. 그러한 그들의 의보다 더 낫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아마도 예수님께서 율법에 대한 동기와 율법을 지키는 행위 모두를 말씀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는 있었지만 율법의 정신, 즉 사랑은 없었기 때문이다.
7. 그들은 사람을 구하는 행위도 안식일에는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율법이 사람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율법의 정신은 율법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때문이다. 사랑이 없는 율법은 건조할 뿐이고, 내가 모든 율법을 지킨다고 하더라도 사랑없는 율법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기 때문인 것이다.
8. 우리 기독교인들의 삶은 이 두 가지가 다 있어야 한다.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더 나아야 한다. 즉 율법의 정신도 지키고, 율법의 행위도 지켜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에는 율법의 행위는 사랑의 행위로 다 대치가 되었다. 더 이상 구약의 율법대로 무엇은 먹고 무엇은 먹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오직 사랑이다. 세상이 기독교인들에게 바라는 것도 정죄가 아닌 “사랑"이 아닐까?
9. 거룩하게 살려고 애쓰되, 우리의 거룩의 기준으로 세상을 정죄하지 않는 것,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만 세상을 섬기는 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 보다 더 나은 삶이 아닐까? 이러한 우리의 삶을 보았을 때 세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까? 우리의 거룩도, 사랑도 놓치지 않는 것이 복음을 가진 자의 삶이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실상은 너무나도 추악한 죄인일 뿐이다. 거룩도 사랑도 없다. 은혜가 필요하다. 은혜로 말미암아 거룩도 사랑도 붙들고 살아갈 수 있는 2023년이 되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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