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3. 1. 1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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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5:33-48 불편한 삶에 대한 소망

1.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삶은 달라야 한다. 그러나 다르다는 것이 그저 선을 행하는 정도의 삶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온전함'을 이뤄내는 인생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 온전함은 우리에게 불편함을 초래한다. 

2. 33-37절에서는 맹세하지 말 것을 이야기 한다. 왜냐하면 맹세라는 것은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인데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맹세를 지킬 수 있을거라 확신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도 검게 할 수 없는 피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전과는 다른 법을 요청하셨다. 이전 법은 함부라비 법으로 대표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다. 복수가 당연하고,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는게 마땅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법'을 말씀하셨다. 

4. 그리고 원수조차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3-44절). 이 얼마나 마음이 불편한가? 우리에게 편안한 것은 원수를 미워하는 것이지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5. 마지막으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닮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48절). 우리와 같은 악한 죄인들에게 이러한 모든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6. 가능함 여부를 떠나서 우리가 반드시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고, 선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5절 하반부) 하나님은 언제나 의인과 악인에게 동일하게 공평하시다. 

7. 그리고 그 공평함의 극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 누구든지, 그가 어떠한 사람이든지 관계없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믿음 만을 요구한다. 

8.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이후의 삶에는 그저 선을 행하는 정도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온전함을 요구하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과 구원 받은 이후의 삶을 동일 선상에 두고 생각해서는 예수님을 오해하게 된다. 구원받은 이후의 삶은 우리의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즉 막 살아도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구원이 취소되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온전함(그리스도의 삶을 닮아갈 것)을 요구하셨다. 

9. 소금과 빛의 사명을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이다. 한국 기독교가 신뢰를 잃어가고, 소금과 빛의 사명을 잃어가는 이유는 바로 이 구원과 구원 이후의 삶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오해했기 때문이다. 그저 구원만 받으면 모든 것이 오케이, 값싼 은혜와 값싼 회개를 끊임없이 생산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나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추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 또한 값싼 은혜와 회계 속에서 편안함만을 누리고 있는가? 신앙은 편할 수가 없다. 신앙을 가진 우리의 삶은 불편해야만 한다. 오늘도 값비싼 은혜와 값비싼 회계 속에서 불편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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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