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1:45-57 내가 중요한 사람들이 해야 할 고백
1. 나사로를 부활시킨 예수님의 기적을 본 유대인들은 두 부류로 나눠진다. 아이러니 하게도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는 자와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로 나눠진다.
2. 왜 똑같은 기적을 보고서 두 그룹으로 나눠지는가? 두 부류는 각각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그리스도로 보았기 보다는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고 했다.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여 볼 때 어떤 것이 더 이익인지에 따라서 나눠졌다고 볼 수 있다.
3. 믿은 자들은 아마도 예수님을 유대인들의 만의 메시아로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순수하게 믿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후의 본문들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어쨌든 그리스도를 구약 이사야의 예언대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받는 종으로 오시는 분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구원하여 주시는 유대인들 만의 메시아로 소망했던 것 같다.
4. 반대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무리들은 로마로 부터 자신의 지위와 재산을 보호받았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민란을 두려워했다.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48절) 민란이 발생하여 가진 것을 빼앗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대시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5. 이 두 그룹을 보면서 베드로에게 던졌던 예수님의 질문이 생각났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5) 나는 어떤 그룹에 속한 사람일까? 첫 번째 그룹처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지만 예수님은 반드시 나만의 하나님이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은 램프의 지니처럼 나를 위한 하나님이셔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잘 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지는 않은가?
6. 아니라면 두 번째 그룹의 모습 처럼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은 희생하셔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그 분이 메시아이든 아니든 상관없고,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나의 권력과 자리일 뿐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잘 되는 것, 내가 편안하고, 행복한 것 이기에 예수를 이용하려고 하지 않는가?
7. 두 그룹 모두 그리스도 보다 내가 더 중요한 사람들 이었다. 내가 그리스도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그 누구보다도 더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나의 욕망만이 중요하고, 나의 욕망이 채워져야 하고, 결국은 나의 욕망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셔야만 한다. 나에게 이 두 그룹 속의 유대인들의 모습이 없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8. 이러한 우리의 존재의 가벼움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고백할 수 있게 된다. “Not I, but Christ” 내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고백이다. 나의 욕망보다 그리스도께서 더 귀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리스도를 위해 움직이게 된다. 이렇게 고백하기 위해서는 유대인 두 그룹이 예수님을 대했던 것과 같은 나의 태도에서 절망을 보아야만 한다. 나에게 이 두 그룹 속의 유대인들처럼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고 있었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고 있었음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우리를 위해 약속대로 죽어주셨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분의 크심을 발견해야 한다. 그래야만 나는 죽고 예수로 살 수 있다.
9. 오늘 나는 어떤 욕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 욕망을 뒤로 하고 “Not I, but Christ” 를 외치며 그리스도를 따라 한 걸음을 내딛기 원한다. 누구를 위한 사역이며, 누구를 위한 선교인가?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다 욕망일 뿐이다. 내 안에 사역을 잘 하는 선교사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만 사랑하고, 그리스도만 전하는 선교사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오늘도 “Not I, but Christ” 로 살아가기 원한다. 욕망이 아니라 복음이 나를 이끌어 가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붐 형제(어제 사진에 보셨던 테오 형제 동생)와 1:1 성경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한 달 즈음 전에 저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듣고 중요한 일을 결정하냐고 질문을 했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믿음은 있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알아야 할 것들을 거의 모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본인도 이야기 하기를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 한 번도 양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하여 1:1 성경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동안 힘든 일들도 많았고, 무엇인가를 잘해내야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줄 거라고 믿으면서 부담도 많이 컸던 것 같습니다. 양육을 통해 붐 형제가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참 자유와 평안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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